아플 때는 된장찌개

by 배지영


목요일, ‘밥걱정의 노예’ 강성옥씨가 출장 갔다. 집에 남은 자들에게는 2박 3일간 밥 안 먹을 자유가 주어졌다. 강썬님은 아침부터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고, 운동 가기 전에는 편의점에서 치킨, 치즈볼, 순살꼬치를 사 먹었다. 밤에는 내가 구워준 고기 몇 점에 깻잎을 싸서 먹었다. 나는 자매님이 후아후아 브레드에서 사다 준 빵을 먹었다.


그다음 날 강썬님의 식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자매님이 끓여다 준 호박죽을 먹고 나서 후아후아 브래드의 스콘을 먹었다. 밤에는 금요일이니까 둘이서 기분을 냈다. 떡볶이와 대왕오징어 튀김을 사 왔다. 거실에서 유튜브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면서 먹는데 입안이 헐어서 아팠다. 떡볶이가 맵게 느껴졌고 바삭한 오징어 튀김이 약간 거슬렸다. 그래도 남기지 않고 싹 먹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비슷한 꿈을 꾼다. 전남 영광은 굴비로 유명하지만, 내가 자란 곳은 버스가 하루에 두세 번 다니는 산골이었다. 마을 전체를 산이 감싸고 있어서 너른 들판은 없었다. 한 필지라고 하는 600평짜리 논은 없었다. 우리 집 앞에는 200평짜리 논이 두세 단으로 있었다. 가을에는 나락을 낫으로 직접 베어서 논에 낟가리를 쌓아뒀다.


어느 해, 추수 끝난 우리 동네 논은 싹 다 경지 정리를 했다. 포클레인이 와서 논을 깊게 파헤쳤다. 농기계가 들어가기 쉽게 하고 평수를 넓히려고 하는 작업이었다. 나락이 자라던 무논 속에 그토록 깊은 낭떠러지가 있었다니. 어린 마음에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왔나 보다. 아프기 직전에는 꼭 깊게 파놓은 논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어릴 때는 자주 앓았다. 아직 20대였고 서로 다정하지 않았던 엄마 아빠는 침착했다. 아빠는 펄펄 끓는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웠고, 엄마는 내 등을 받치면서 달렸다. 대개 밤중이었고, 우리 동네는 가로등도 없었다. 희미한 가로등이 있는 면소재지(집에서 6.5km)가 보이면 엄마는 먼저 달려가서 병원 대문을 두드렸다. 아빠는 한 손으로 내 등을 잡고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약 먹이기 전에 새 밥을 하고 멸치 육수를 내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근력이 없으면 위가 약해지는 거여.” 국에 만 밥이 싫다고 땡깡 부리는 딸에게 엄마는 국물이라도 먹이려고 했다. 나는 슴슴한 된장찌개 국물을 받아먹었다. 하루 이틀 지나서 건더기 있는 누룽지를 먹었다. 엄마는 영양이 부족하다며 베지밀을 하루에 두 병씩 먹였다.


강성옥씨는 밖에 나가면 끼니때만 전화한다. 밥 먹었냐고, 뭐에다 먹었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봐서 맛있게 먹었다고 뭉뚱그려 대답했다. 이틀간 밥은 거의 안 먹었는데 이실직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요일 밤, 나는 오랜만에 옛날 우리 시골의 경지 정리한 논에 서 있었다. 포클레인이 파헤쳐놓은 낭떠러지로 계속 떨어지는 꿈을 꿨다.


토요일 아침. 배지현 자매님이 또 호박죽을 쒀서 가져다주었다. 맛있게 먹었는데 골치가 너무 아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서 토하고 다시 누웠다. 제주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온 강성옥씨가 돌아왔을 때는 환영인사만 건넸다. 짐 풀면서 하는 얘기 들어줘야 하는데.


강성옥씨가 점심 먹으라고 했지만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길 수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면 식구들한테 짐이 된다. 씻으면 몸이 가벼울 것 같아서 샤워했다. 그대로였다. 강성옥씨가 소화제를 찾아주고는 손을 주물러줬다. 좀 나아진 것 같은데 머리 아픈 게 가시지 않았다. 머리도 안 말리고 자서 캄캄할 때야 일어났다.

“강성옥.”

“뭐 먹을래?”

“된장찌개 좀 끓여줘.”


건더기는 그대로 놔두고 국물만 마셨다. 수십 년 전에 엄마가 한 말은 여전히 효과 있었다. 국물이라도 먹으니까 괜찮아졌다. 강성옥씨 된장찌개는 엄마 거랑 다르게 대패목살이나 차돌박이가 들어가지만 군말 않고 천천히 국물을 마셨다. 속이 풀렸고 토하지도 않았다. 식구들이 다 잠든 밤에 나는 혼자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봤다(낮잠 많이 자서 잠 안 옴).


일요일. 강성옥씨는 아점 차리기 전에 만두를 구웠다. 한 개를 천천히 먹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괜찮지 않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고래고래 티 내야 했다. 강성옥씨는 자기가 없는 동안 처자식이 너무나 못 먹은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강썬님 좋아하는 목살을 굽고 된장찌개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월남쌈을 했다. 오 맙소사! 샤브샤브까지.

나는 어릴 때 소를 좋아했고 커서는 소하고 같은 수준으로 풀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속이 편안할 때만. 위에서 신물이 넘어오고 토할 것 같았다. 된장찌개 국물을 원샷으로 마셨다. 샤브샤브에 익한 배추를 건져 먹었다. 월남쌈은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눈치도 없는 강썬님은 배부르다며 조금만 먹고 일어섰다.


먹고 토하느냐, 안 먹고 안 토하느냐.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애써 음식 준비한 거 아니까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강성옥씨가 다 먹을 때까지 앉아 있었다. 밥상을 치울 때 잽싸게 일어나서 그릇을 걷었다.


“미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속이 안 좋아.”

“언제는 많이 먹었어?”


아, 정말.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면 대들고 난리 쳤을 거다. 엄마 때문에 이렇게 대식가 되고 살찌고 못낸이 됐다고. 하지만 강성옥씨는 수산리 아버지 어머니의 귀한 아들. 출장 갔다 와서 쉬지도 못하고 밥하고 치우고 밥하고 치우고. 여기에서 더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샤워하고 집안에서 천천히 걸었다. 오후 5시쯤에야 진짜 허기가 느껴졌다.


“강성옥. 우리 집에 누룽지 있어?”

처음부터 누룽지를 먹어야 했나. 이틀 만에 속이 괜찮아졌다. 강성옥씨는 샤브샤브 하고 남은 고기로 만든 볶음밥, 월남쌈 하고 남은 야채 볶아서 먹었다. 강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목요일 금요일은 편의점 음식에 분식, 토요일 저녁은 쁘링클 치킨, 일요일 저녁은 햄버거 주문해 먹고도 너무나 멀쩡했다. 옛말에 찬 바람 나면 어르신들 아프다고 하던데, 나는 어르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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