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에 독감예방주사와 파상풍예방주사를 동시에 맞은 강썬님에게 주사 부작용이 있었다. 설거지를 싹 해놓고는 36시간 동안이나 자기가 싱크대를 깨끗하게 치워놨는데 왜 설거지 할 그릇이 나왔느냐고 따라다니며 잔소리했다.
난 그때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떠올렸다. 강썬님이 살아온 인생으로 보자면, 코로나 백신 접종 후에 ‘강력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 같았다. 어떤 현상이 발생할 것인지 두려울 정도였다.
화이자 백신 접종은 12월 15일 수요일 오후 3시.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나? 강썬님은 백신 맞기 이틀 전에 부작용부터 생겼다. 태어나 처음으로 콕 집어서 책을 사오라고 했다. 나는 명을 거역하지 않고 <동희의 오늘>을 사서 퇴근했다. 잠자리에서 읽어드렸다. 피곤하니까 두 챕터만 읽겠다고 미리 밝혔지만.
“엄마! 더 읽어 줘라.”
다섯 챕터까지 읽어드렸다.
“여기서 그만 읽으면 궁금해서 잠 오겠어?”
그리하여 3시간에 걸쳐서, 끝까지, 읽어드렸다. 잘 자라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나이트클럽에서 새벽 4시까지 논 스물두 살 때처럼 갈라져 있었다. 화요일에 강썬님은 즐겨하시는 줄넘기도 하지 않고 무려 세 달간 수련 중인 러시아 격투기 삼보 체육관에도 가지 않았다.
화이자 백신 접종한 날은 대단했다. 열도 안 나고 팔에 근육통도 없지만 먹고 싶은 배달 음식 리스트는 다양하신 강썬님. 나는 원하는 대로 시켜드렸다. 흡족하게 드신 강썬님은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서 무제한 게임을 했다. 목요일이 밝았고 전날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먹고 게임하고 유튜브 시청하고.
강썬님이 금요일에 일상을 회복한 건 플리 마켓 덕분이었다. 한 개에 6~7만 원씩 주고 산(내계좌에서 송금했음) 큐브를 단돈 100원에 팔기 위해 등교하셨다. 나한테는 세 개만 팔았다고 하는데, 하도 많아서 몇 개가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강썬님의 백신 후유증을 나 혼자서만 받아냈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제규는 강썬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강성옥씨는 장봐 온 시금치가 냉장고에서 시드는 것만 신경쓰는 것 같았다. 출근을 서둘러야 할 금요일 아침에 냄비에 물을 넣고 끓였다. 시금치를 데쳐서 무쳤다.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가 식탁 쪽에 가득했다. 강썬님의 발밑에 바짝 엎드려 살아온 지난 닷새를 잊을 만 했다.
강성옥씨는 소분해놓은 국거리용 소고기를 작은 냄비에 끓였다. 그는 미역국이나 소고기뭇국을 끓일 때는 냄비 두 개를 사용한다. 작은 냄비에서 소고기를 미리 끓이면서 불순물을 걷어낸다. 어느 정도 끓고 나서야 큰 냄비에 고깃국물을 넣고 다른 재료와 같이 끓인다. 국물이 잘 우러난 미역국은 먹기 전부터 뱃속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강성옥씨는 냉장고에서 전날 가지고 퇴근한 샌드위치를 꺼내줬다. 정갈하게 밥상을 차릴 시간은 없었다. 그는 안방으로 가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 배낭을 메고 신발을 신으면서 말했다. “먹어!”
울컥했다. 강썬님 임신했을 때 조산으로 두 달 넘게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임신성 당뇨에 임신성 혈소판 감소증에 임신성 빈혈. 이러저러한 문제가 더 있어서 물도 마음껏 마실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먹고 싶었던 건 샌드위치. 식전 당뇨 검사를 해야 해서 강성옥씨가 사다준 샌드위치와 하룻밤을 지냈다. 새벽 검사 결과는 최악.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다. 나는 샌드위치 먹고 싶다고 통곡했다. 뒤집어 쓴 이불 한 쪽이 젖도록 울었다.
36주 만에 태어난 강썬님은 몇 가지 수치가 정상에 못 미쳤다. 하지만 폐로 자가 호흡할 수 있는 대단한 아기였다. 두 달 넘게 누워서만 지낸 나도 물론 칭찬받을만 했다. 큰시누이는 날마다 새로 끓인 미역국에 나물을 무쳐서 강성옥씨 편에 보냈다. 강성옥씨는 갖가지 샌드위치를 사왔다. 나는 미역국에 시금치, 그리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밥 안 먹어도 확실히 배불렀다.
미역국과 시금치나물과 샌드위치 조합은 강썬님을 낳고 감격했던 순간으로 나를 끌고갔다. 숨만 쉬어도 대단한 아기라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먹으면서 나는 다짐했다. 화이자 2차 백신 접종 5일 전부터 강썬님의 발 아래 엎드릴 거라고. 한 자리에서 책을 10시간씩 읽어드리고 배달 음식은 100가지 시켜달라고 해도 기쁘게 임무를 수행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