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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Mar 27. 2022

내일부터 해방

목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한 강썬님은 3월 18일(금)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토록 좋아하는 뿌링클 치킨도 먹지 못할 만큼 아팠다. 열이 높았고 기침이 심했다. 페이스톡을 켜고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볼 만큼 ‘철저하게’ 격리했지만, 새벽마다 안방으로 가서 아이 상태를 확인했다.


사흘 뒤에 우리 부부도 확진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코로나 진단키트 검사했고 음성이었지만 이미 몸살 기운 있었고 목이 아팠다. 나는 보건소에서 PCR 검사받고서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방문을 열어 와락 껴안고 뽀뽀하면서 우리의 감염을 인정했다.


셋 다 목이 많이 아프고 기침을 심하게 했다. 나는 열나지 않았지만 강성옥씨는 얼음주머니를 정수리에 올리고 있었다. 골치가 아프고 그냥 좀 괴로웠다. 알아서 진통제를 중간중간 먹었다. 강성옥씨는 용각산(스틱형으로 나옴)을 하루에 10포 이상 먹었다.


우리는 미각과 후각을 잃지 않았다. 인류애를 실천하시는 분들이 족발, 갈비, 아이스크림, 쌀빵, 딸기, 천혜향, 전복죽 등을 보내주었다. 골치 아프고 삭신이 쑤셔서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치킨 2회, 피자 1회, 중국음식 1회를 주문해서 먹었다. 셋 다 물을 몹시 많이 마셔서 나는 하루에 보리차를 세 번씩 끓였다.


가장 맛있게 먹은 건 콩나물국. 목 아프고 기침이 많이 나와서 답답할 때 안성맞춤이었다. 맵거나 짜지 않고 뜨거운데 시원한 국물. 아삭하고 담백한 식감이 개운했다. 양심을 가진 나는 강성옥씨에게 하루에 두 끼만 먹을 거라고 했다. 내 말 따위 듣지 않는 강성옥씨는 식사 외에 고열량 간식도 몇 번 만들었다.

단 한 번의 가정불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요구하는 게 없었다.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다가 거실 소파에 모였다가 방으로 흩어졌다. 이미 병을 이겨낸 사람들이 사흘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우리는 닷새째까지 부대꼈다. 그 후로는 미친 듯이 잠이 쏟아져서 신생아 수준으로 잤다.


유행어도 생겼다. “용각산 먹어.” 강성옥씨의 시그니처 언어다. 게임 안 돼도, 보고 싶은 드라마 검색 안 돼도, 샤워하고 머리 덜 말리고 이불속에 들어가도, 일하려고 노트북 켰는데 머리 아파도, 기침 너무 많이 해서 허리 아파도, 용각산 먹으라고 했다. 강썬과 나는 마주 보고 으하하하 웃으면서 서로에게 용각산을 권했다. 하튼, 만병통치약으로 급부상한 의약품에 대한 예의니까.


일주일 동안 일은 하나도 못 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 하는 학생처럼 책상에만 앉으면 집중이 안 됐다. 영화 <안시성>을 봤고,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정주행했고, 유튜브에서 드라마 <눈이 부시게> 요약본을 봤고, 철학 강의를 들었다.


내일이면 밖으로 나간다.

강썬님은 더블유 미들스쿨로, 강성옥씨는 회사로. 나는 서점으로. 남주혁 배우 인터뷰 나온다길래 에스콰이어 4월호 주문해 놨다.ㅋㅋㅋㅋㅋ

#남편의레시피

#콩나물국

#자가격리

#인류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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