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한창 잘 먹던 시기에는 우리의 식탁은 물론이고 인생도 풍족했다. 사랑이나 연애니 하는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알찼다 –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제규가 중고등학교 다니고 선규가 유치원 가방을 메고 왔다 갔다 하던 시기에 우리 집 식탁은 지나치게 풍족했다. 강성옥씨는 특히 김치의 수급과 보관에 충실하게 임했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 접이식 대형 대차(카트)를 싣고 다녔다. 봄동, 파김치, 열무김치, 물김치, 겉절이, 고구마순 김치, 깍두기를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노련한 전문가처럼 시가에서 우리 집으로 날랐다.
시가는 김장을 2박 3일에 걸쳐서 진행했다. 밭에서 키운 배추를 1,000포기 넘게 뽑아 겉장을 떼 내 소금 간하고 물을 뺐다. 마당에 솥 걸고 불을 지펴 육수를 만들고 각종 채소를 다듬어 채 썰어서 양념을 만들었다. 시부모님이 낳고 기른 5남매 중 4남매는 같은 도시에 산다. 집집마다 한 명 이상은 시가에서 벌이는 ‘김장 전투’에 참여했다.
“배지영이는 올 필요 없어. 성옥이만 오믄 된다.”
살아계셨을 적에 시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식생활 분야에서 미미했던 내 존재감은 점점 눈 씻고 봐야 할 정도였다. 강썬 낳고 나서는 김장한다는 통보 전화조차 받지 못했다. 아침 일찍 김장하러 갔던 강성옥씨는 해 질 녘에 자동차 트렁크와 뒷좌석이 꽉 차게 김치통을 실어왔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솜씨 좋게 대형 대차에 쌓아서 두세 번에 걸쳐 집으로 옮겼다.
우리 집 겨울맞이는 첫눈 오기 전에 김치를 쟁이면서 시작하는 셈이었다. 김치냉장고에는 김치통 12개가 들어갔다. 식재료를 끊임없이 다듬고 끓이고 지지고 볶고 굽는 강성옥씨는 뒤 베란다에 따로 배추김치 4~5통과 무김치를 산성처럼 쌓았다. 우리 집에서는 김치 없이 라면을 먹거나 맨밥에 물을 말아먹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김치란 무엇인가. 강성옥씨에게는 반찬보다는 식량이었다. 그는 차가운 저장 용기를 열어서 개운한 맛을 발산하는 김치를 꺼냈다. 돼지고기 잔뜩 넣고 김치를 볶았다. 등갈비와 고등어 꽁치를 넣고 김치찜을 했다. 두부김치를 하고, 김치볶음밥 위에 치즈를 뿌려 오븐에 돌리고, 어머니 때부터 내려온 김치볶음김밥을 만들었다. 강썬은 아기 때부터 김치 들어간 음식이 맵다며 뱉어내지 않았다. 주말에는 장정 같은 제규 친구들도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같이 먹곤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품을 물려받은 강성옥씨는 처자식에게 바라는 것 없이 너그럽다. 사춘기에 걸맞게 ‘흑화’된 제규가 주먹으로 자기 방의 문을 박살 내고 집안이 떠내려갈 듯 괴성을 질러도 비위를 맞춰주었다. 끼니 닥쳐와도 가만히 있는 ‘무능력한 아내’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채근하지 않았다. 뜨거운 가스 불 앞에 서는 여름에도, 숙취로 고생하는 이른 아침에도 밥하는 자기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다.
딱 한 번,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김치냉장고가 말썽을 부리자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강성옥씨도 자기 고집을 내세웠다. 수리 기사가 두 번 다녀가도 꽁꽁 언 김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김치맛이 왜 이래요?” 제규의 한 마디에 강성옥씨는 추수 앞두고 태풍을 맞은 농부처럼 망연자실했다. 당장 가전제품 대리점에 가서 김치냉장고를 새로 사는 데까지는 박력 있었다. 그런데 버려야 할 냉장고를 냉동고로 쓰고 싶어 했다. 살림력이 몹시 떨어지는 처지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내 의견을 냈다.
“강성옥, 김치냉장고 그냥 버려!”
“배지영이 부엌 살림하는 거 아니잖아. 있으면 다 쓰는 거야.”
“싫다고! 냉장고가 집에 세 대나 있는 게 맘에 안 들어.”
나는 강성옥씨가 걸리적거린다고 해서 정수기 위에 둔 탁상 달력을 치웠다. 머그컵들이 너줄너줄한 게 싫다며 네 개만 남겨놓고 수납장에 싹 집어넣어도 군소리하지 않았다. 수전 왼쪽 공간에 기다란 접시 꽂이를 두 개나 꺼내서 접시를 20장 내놓고 써도 아무 말 안 했다. 그러니 냉장고가 거슬린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김치냉장고는 가정불화의 도화선이 되지 않았다. “그래, 버리자.” 강성옥씨는 1~2분 만에 뜻을 꺾고는 김치통을 신구 교체하는 대공사에 들어갔다. 비싼 과일이나 간장게장 등을 줄 때도 주차장까지만 오는 큰시누이가 앞치마 차림으로 우리 집에 왔다. 강성옥씨와 합을 맞춰서 빠르고 확실하게 일을 끝마쳤다. 그리고는 막냇동생네가 새로 이사 온 것처럼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줬다.
“이제 겨우 두 통 먹었네.”
봄에서 여름으로 기우는 5월, 강성옥씨가 말했다. 한두 해 전만 해도 이맘때쯤에는 김치냉장고의 김치를 절반 이상 먹었다고 했다. 제규가 복학해서 집을 떠나 3인 가구가 되었다고 해도 올해는 지나치게 김치가 많이 남았단다. 중학생이 된 강썬 친구들은 주말에 놀러 오면 배달음식을 먹었다. 강성옥씨는 아침 안 먹고 저녁 식사 때도 밥만 차려주고 나가서 모임이나 회의할 때가 많으니까 혹시 이 말은 나를 저격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매정하게 대꾸하는 게 인지상정. 줄지 않는 김치는 아이들이 컸다는 유력한 실증이라면서 우리 집도 김치 한두 통으로 1년 내내 끄떡없는 가정이 될 거라고, 강성옥씨도 드디어 ‘밥걱정의 노예’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내 말의 어디가 싫었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습관적으로 부엌에 가는 강성옥씨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신선한 재료 두 가지를 꺼내고 싱크대 하부장에서 또 한 가지를 꺼내서 김치를 잘게 다졌다. ‘그것’을 만들려는 심산 같았다.
아이들이 싫어해서 밀가루를 쓰지 않고 만드는 ‘그것’은 두부김치전. 강성옥씨는 두부 반 모, 달걀 5~7개, 참치캔 1개, 잘게 다진 김치 4분의 1포기를 섞어서 반죽한다. 기름 두른 프라이팬을 달궈서 국자로 크게 떠서 부친다. 고소하고 달큼하고 입맛 도는 특유의 기름 냄새는 각자 방에 있던 아이들을 유인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빠의 뒤태가 잘 보이는 식탁에 앉는다.
“아빠가 해야 맛있어요. 다른 사람이 하면 그 맛이 안 나.”
강성옥씨보다 다양한 식재료를 쓰고 이국적인 음식까지 척척 만드는 제규는 온라인 게임이나 큐브처럼 음식에도 심하게 꽂히는 성향을 가졌다. 일주일 내내 먹고도 두부김치전이 식탁에 오르면 새우깡에 달려드는 갈매기처럼 끽끽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신이 난 강성옥씨는 ‘두부김치전 탑’을 만들었다. 꼭대기에 있는 따끈한 전을 먹은 제규는 그다음부터 바삭한 부분만 골라서 젓가락질을 했다. 남은 전은 식혀서 뜨거운 밥에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었다.
제 형보다 까다로운 강썬은 입덧하는 사람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 콕 집어 말한다. 기저귀 안 뗀 아기 때도 “하얀 고기(굴비) 구워 주세요.”“데친 오징어 먹고 싶어요.”라고 했다. 지금은 컸다며 친구들과 햄버거에 치킨, 편의점 라면 먹고 쏘다니는데 일요일 저녁쯤에는 “된장국에 두부김치전이나 양파전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러니 강성옥씨는 머릿속으로 메뉴 선정하느라 바쁘다. 퇴근 후에 집에 못 들를 것 같은 아침에는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갈비를 재고 두부김치전 반죽을 만들어서 커다란 글라스락에 담아놓고 출근한다. 나는 강성옥씨처럼 큼지막하고 둥그렇게 전을 부칠 수 없다. 숟가락으로 반죽을 두 번 떠서 작게 부치는데도 모양이 부서진다. 자신 없으니까 화력을 가장 약하게 해놓고 하염없이 프라이팬을 바라본다.
세상에나! 불멍, 물벙, 구름멍처럼 ‘팬멍’의 세계도 존재했다. 프라이팬 위에서 두부김치전이 불그스름하게 익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평화로웠다. 명절마다 그 덩치에 반나절 넘게 거실 바닥에 앉아서 커다란 전기 팬에 갖가지 전 부치는 일을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은 강성옥씨가 이해될 것 같았다. 요리하면서도 업무 전화 받아야 할 만큼 일에 쫓기는 그는 ‘팬멍’으로 잠깐의 고요를 맛보고 있었나 보다.
전 부치기에 대한 퍼즐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강성옥씨는 두부 떨어진 날에 애호박이나 양파로 노릇노릇한 전을 부쳤다. 식생활 개선해서 아이들에게 지지고 볶는 음식 덜 먹일 거라는 선언하고서도 프라이팬을 꺼냈다. 우리 집 밥상에 전이 빠지는 날은 거의 없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는 새송이버섯전, 깻잎전, 스팸전까지 부쳐서 올렸다.
강성옥씨와 두부김치전의 연결고리는 ‘팬멍’이었다. 그런데 자신 없어가지고 작게 부친 내 두부김치전에서 탄내가 올라왔다. 맛 감별사인 강썬이 타박할 것 같아서 잽싸게 버리고 다시 반죽을 숟가락으로 떴다. 테두리부터 익어가는 전을 멍하게 바라봤다. ‘팬멍’을 즐겨왔을 강성옥씨는 두꺼우면서도 넓적한 두부김치전을 어떻게 완벽하게 부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