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자씨는 ‘선택적’으로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 점심 먹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밝히고 출발했는데 차려져 있는 밥상. 우리 자매는 오후 3시에 밥을 먹어야 했다.
조금자씨가 사는 아파트는 전남 영광군 법성면의 핫플레이스에 있다. 우리는 관공서와 성당과 교회와 은행과 마트와 상점과 목욕탕과 학교와 식당과 카페와 그리고 굴비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갔다.
살찌고 못낸이 된 중년의 딸들은 조금자씨의 뒤태를 본다. 오로지 육체 노동으로 새끼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킨 장정 같은 사람에게 로맨스는 단 한 번뿐이었다. 어느 해 추석, 마주앉아 송편을 빚는 배형환씨는 조금자씨가 작고 예쁘게 빚으라고 해도 어린이 머리통만큼 크게 만들고 끝냈다. 올해 혼자서 송편을 빚었다는 조금자씨는 그때의 로맨스가 그리운지 자꾸자꾸 이야기했다.
당신의 살과 뼈를 갈아넣는 노동으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지만 손에 쥐고 있는 건 많지 않은 조금자씨에게 카페 가서 커피 좀 마시자고 했다. 꿈쩍하지 않는 74세 여성에게 나는 기어이 한 마디 하고 말았다.
“엄마! 엄마가 왜 돈 많이 없는지 알아? 일만 해서 그래. 카페도 가고 놀고 그랬어야지.”
돈 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 자매는 카페에 갔다. 저녁에 군산 와서. 배지현 자매님이 사 준 카페라떼 맛있었다.
오늘의 특이점 – 시골 아파트 주차장과 계단을 차지한 농작물. 자동차 운전자는 그거 치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동차 바퀴로 농작물을 스치거나 뭉갠 운전자는 욕 먹는 게 당연하다. 나는 공손한 자세로 농작물과 한참 떨어진 자리에 주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