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by 배지영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도 썼는데, 원고지 14매짜리 집밥 에세이가 어려워?

네, 몹시 그렇습니다.


며칠 고민하다가 낮에 쓴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내가 먹은 밥은 1933년에 태어난 강호병 씨와 닿아 있다.”


수산리 아버지 강호병 씨는 군 복무 중에 혼인했고 제대한 뒤에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풀이 우거지지 않은, 인적 드물지 않은, 부엌으로 갔다. 처자식 줄 밥을 하고,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이웃과 친구들을 불러 함께 먹었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확실히 내 삶에는 영향을 미쳤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강성옥 씨가 차려준 밥을 먹었고, 점심에는 모처럼 쉬는 날이라 집에 있는 강제규님이 무능력한 어머니와 게임에 미친 중1 동생의 밥을 챙겨줬다. 그러고는 여자친구 갖다 줄 도시락을 쌌다. 그렇다면 집밥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나야 할까.


“점심에 조*윤님(강제규님 여자친구)이 먹은 밥도 1933년에 태어난 강호병 씨와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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