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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Apr 14. 2023

운명

중2님 잠들기 전에는 침대에 잠깐 같이 누워 잡담한다. 어젯밤의 주제는 중학교 첫 시험.


“엄마, 나 시험 잘 보면 뭐 해 줄 거야? 폰 바꿔 줘라.”

“시험 점수는 네 거야. 엄마랑 별 상관없는데?”

“다른 애들은 엄마들이 다 뭐 해 준다고 했대. 그러니까 나도 85점 넘으면 바꿔 줘.”


우리 집 중2님은 뭐에 꽂히면 자가발전기 돌리는 타입이다. 볼링 하루에 30게임씩, 포켓몬고 하루에 3만보씩, 큐브는 손톱이 다 들리도록 하루 내내. 그렇게 뜨거운 분이 목표한 점수 받을 때마다 폰 바꿔 줘라, 콤퓨타 바꿔 줘라, 자동차 사 줘라 하면 어쩔 텐가.ㅋㅋㅋㅋㅋㅋ


중2님의 폰은 2019년 가을에 샀다. 그때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에 들어갈 사진 찍어야 하니까 내 폰도 같이 바꿨다. 햇수로 5년, 만 3년 7개월을 썼다. 바꿔줄 때가 된 거다. 그런데 내 마음을 귀신처럼 간파한 중2님의 폰은 오늘 오후 4시쯤에 수송동의 편의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즉시 기능을 상실했다.  


오늘 읽은 책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신형철 선생님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말하면서 열 달 동안 엄마에게 주요 임신 부작용을 거의 싹 다 경험하게 만들고 태어난 선생님의 아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렇게도 표현했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이쯤 되면 중2님의 폰 교체는 운명이다. 부모로서 신속하게 행동하도록 도 시를 올린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중2

#시험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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