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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사진 배달인들

by 배지영

일과를 마치고 샤워까지 싹 마친 시간은 저녁 7시 30분. PT 받던 ‘진정한 체육인’이 단체방에 무지개 동영상을 보냈다. 와! 정말 끝내줬다. 근데 ‘AI가 찍은 건가? 왜 아무 소리 안 나지?’라고 의심할 때에 촬영하는 체육인의 작고 낮은 탄성이 터지는 게 들렸다.


나도 직관하고 싶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내 스마트폰 단체방에는 '감탄사 수련하는 분들'이 보내주는 무지개 사진이 차곡차곡 쌓였다. 집에서, 길에서, 직장에서, 공원에서 만난 크고 아름다운 쌍무지개였다.


죽기 직전에는 자기 일생이 슬라이드 화면처럼 촤르르 지나간다고 하던데, 나한테도 그 현상이 일어났다. 어릴 때 산자락에 걸친 무지개 쫓아다니던 장면이 영상 지원됐다. 흥분해가지고 손까지 좀 떨렸다.

언덕이 있는 예술의 전당으로 가려다가 산이 있는 월명공원 쪽으로 갔다. 무지개는 사라지고 없지만, 골목길도 오랜만에 걷고 전봇대 너머로 지는 노을도 봤다. 혼자만 무지개 못 봤다고 낙담하지 않고 해 떨어질 때까지 산책했다.


태풍이 그냥 확 약해져서 한반도를 존재감 없이 스쳐갔으면 좋겠다.

오늘의 이 아름다운 술렁거림이 사람들 사이에 며칠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


#무지개

#군산쌍무지개

#사진보내주신분들고맙습니다

#나만무지개못봤어

#대신노을봤지요

#태풍약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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