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를 들고 엘베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이미 콧물을 훌쩍였다. 시동을 건 채로 작별 인사를 잽싸게 하고 아파트 주차장을 돌아 나왔다. 내 차 트렁크에 실린 보자기는 읽고 나서 누군가를 붙잡고 막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책 같았다. 노란색 빨간색 보자기 때문에 나는 전남 영광 법성포의 어느 갓길에 차를 세웠다.
오늘 아침 8시에 군산 집에서 출발했다. 1시간 30분 운전해서 영광 엄마 집에 도착했다. 10분 정도 누워 있다가 다시 50분간 운전해서 고창의 유명한 장어구이 집에 갔다(오픈런 1등).
장어 안 좋아하는 나는 엄마 아빠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 건 좋아한다. 쌍수한 엄마가 미용실 원장님이 권하는 마사지 기구와 화장품을 50만 원어치 사서 피부가 깨끗한 것도 기쁘고, 미담 없이 살아온 아빠가 라디오 프로그램 사연 같은 당신의 ‘미담’을 몇 번이고 들려주는 것(소상히 얘기하고 싶닼ㅋㅋㅋ)도 귀엽다.
1시간 운전해서 고모할머니도 뵈러 갔다. 아빠보다 열 살 많은 고모할머니(1938년생)가 좋아하는 건 육회와 소주. 동네 할머니들 모여 있다길래 고기를 많이 사고 소주는 박스로 샀다. 할머니는 영화 <서편제>에서 동호와 송화가 판소리 하던 팽나무(수령 450년) 옆 정자에 있었다. 완전 시원하고 기분 좋은 곳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재미있었다. “살아가는 일이 요로코 좋을 수가 없다이.”라고 말하는 엄마 인생의 구멍은 아빠. 그런 아빠도 이제 엄마에게 꼭 필요하다. 젊어서부터 PC방에 열심히 드나들고, 핸드폰 최신 기종이 나올 때마다 갈아타던 얼리 아답터 생활은 헛되지 않았다. 전남 영광에 사는 1948년생 남성 중에서 디지털에 가장 강한 아빠는 엄마 스마트폰 관리도 척척 해준다. 쌍수할 때 성형외과도 같이 가고, 허리 수술할 때 병간호도 1일 1시간 이상은 했다.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 못 갔어도 완벽한 날이었다. 그러나 하루 내내 엄마 아빠랑 지내다 보니 보였다. 아빠는 걷는 걸 힘들어한다. 허리 수술을 한 엄마는 앉았다 일어날 때도 조심스럽다. 엄마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고 있다. 내 짐을 싼 보자기를 엄마 집에서 주차장까지 처음으로 직접 들고 내려온 날,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흐느꼈다.
P.S 어제까지 냉장고 정리정돈가를 꿈꿨는데 이것저것 꽉 찬 엄마 냉장고 보고 포기했다. 우리 엄마 냉장고는 세종시에 사는 남동생이 한 번씩 치운다. 베란다 정리도 화장실 청소도 남동생이 한다. 역시 엄마에게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