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0. 230409
오늘은 야마(Yama)의 첫 번째 계율인 아힘사(Ahimsa)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아힘사는 비폭력, 살아있는 모든 것에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만으로 아힘사를 설명하기는 부족해요.
아힘사를 어떻게 실천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텐데요. 나, 타인 또는 동물과 자연에게 조금 더 친절해져 보는 것이 일례가 되겠죠.
그럼 나는 어떻게 아힘사를 실천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비거니즘’을 떠올렸습니다.
비거니즘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 채식주의를 넘어, 어떤 목적에서든 동물에 대한 착취와 학대를 거부하는 철학이자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저는 작년 호주 요가원에서 지내며 처음 비건 식습관을 접했는데요. 당시 비건,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나 깊은 의식을 크게 갖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저 봉사자로 발 디딘 낯선 곳에서, 비건식만 요리하고 제공한다는 사실과 맞닥뜨린 것이죠.
저는 고기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가원은 도심에서 먼 시드니 근교 산속이었기에 식당에 갈 수 없는 환경이었고, 고기, 해산물, 심지어 계란까지 없는 현실이 참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3주간 요가원에서 지내면서 경험한 음식들은 비건식에 대한 인식을 180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건 음식은 풀만 있을 거라는 편견과 달리 정-말 맛있었습니다. 게다가 소화도 굉장히 잘 되었고요.
어느 날 거울을 보았는데, 피부가 반짝거림을 느꼈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비건식의 효과가 신체의 변화로써 바로 실감되더라고요.
또 놀라운 변화 중 하나는, 비건이라고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끼리도 비건이더라고요.) 비건 재료로 얼마든지 맛있는 식사와 디저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것에도 해를 끼치지 않은 건강한 음식으로 나를 돌봐주니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것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나와 정말 다른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힘을 선물해 주더라고요. 건강한 음식과 함께 건강한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음을 언어 너머의 뜻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온 후였습니다.
호주에서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좋은 식습관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었는데요, 한국은 비건이 살아가기 참 힘든 나라입니다.
호주와 발리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도 비건 옵션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한국에서는 비건 식당 찾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는 얼른 마땅한 식당을 찾아서 먼저 선수를 쳐야 하는 부담이 생겼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는 점심시간마다 고기가 없는 곳에 가자고 할 수는 없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처음에는 스스로를 무척 다그쳤습니다.
“너, 비건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하면서요.
매번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정하기가 어려워지자 저는 해산물까지 허용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슬며시 전환했습니다.
그러다 회사생활을 시작하고는 도저히 이어가기 어려웠고, 이제는 ‘내 돈으로는 고기를 사 먹지 말자’는 신념으로 함께하는 식사를 제외하고 스스로 비건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작년 비건을 접한 이후로 삼겹살이나 구운 고기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데요. 최근 회사에서 간 워케이션에서 회식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공지된 식당이 삼겹살을 메인으로 하는 곳이었고, 저는 삼겹살을 안 먹은 지 한참 됐기에 꽤나 긴장 상태였죠.
그런데 그곳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옆자리 직원 분께서 비건이신 거예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럼 우리 두부전골을 시키자고 말했고, 용기 내어 우리는 다른 메뉴를 시켜 나눠 먹었어요.
다행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어색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흔쾌히 다른 메뉴를 시키라며 오히려 고려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기색을 보이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용기 낸 두부전골을 앞에 두고 동료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신나는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는, 야근을 하던 중 동료 분께서 치킨이 먹고 싶다 하셨어요.
비건을 지향하는 가치관을 크게 알리고 있지 않은 터라, “오 맛있겠어요. 시키시죠!” 하고는 분위기에 맞춰 한 조각을 들었습니다. 양념과 튀김은 맛있었죠.
그런데 고기를 입에 넣으면서 내가 뭘 먹고 있는 거지? 차라리 가지 탕수를 먹겠어.. 이런 생각과 혼란, 죄책감, 여러 감정들이 밀려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비건을 지향한다 말하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너무 큰 자책을 하며 아힘사와 반대되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해한 것입니다.
물론 비건을 실천하며 그 어느 것에도 폭력을 가하지 않은 것을 소비하는 것은 무척 빛나는 일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덜 자책하며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실천해야겠구나 다짐했습니다. 더불어 잘 살자고 하는 거니까요.
(개인적인 견해이며 완전한 비건을 실천하시는 분들을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이번 주에는 책 <나의 비거니즘 만화: 어느 비건의 채식&동물권>을 읽었는데요. 비거니즘은 방향성이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불완전한 실천도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일주일에 하루는 비건식을 먹어보거나, 가죽 제품을 사지 않거나, 육식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는 것 같은 일들이요.
비건을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로 다가가면 나를 가두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비거니즘을 삶의 방향으로써 바라보려고 해요.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비건식을 먹고, 비건 제품을 소비하며 동물과 자연을 해하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들.
이렇게 하나씩 실천해 나간다면, 나와 연결되는 세계를 평화롭게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요?
Namas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