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1. 230416
야마의 마지막 두 계율 브라마치랴야와 아빠리그라하입니다.
브라마차리야(Brahmacarya)는 ‘신과 함께 걷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한 금욕, 성욕의 절제, 탐욕하지 않음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를 ‘성생활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던데, 너무 극단적인 해석이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요기가 브라마차리야를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지금 남아있는 그들의 후손은 단 한 명도 없어야 하겠죠. 우리나라만 해도 매년 저출산이 심각하다 하는데, 현대적인 관점에서 이를 과연 미덕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절제’에 초점을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마다 실천할 수 있는 절제의 방식은 다양하겠죠.
여러분은 어떻게 브라마차리야를 실천해 보시겠어요?
아빠리그라하(Aparigraha)는 집착/과욕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무소유’라고도 하는데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삶은 역시 불가능할 것입니다.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물질(의식주 등)이 어느 정도 필요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필요한 것 이상으로 과욕을 부리거나 집착하지 않는 태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가진 집착 중 하나는 콘텐츠입니다. 저는 양질의 콘텐츠를 발견했을 때 당장 읽을 수 없다면 저장부터 하고 보는 강박이 있는데요. 언젠가 보겠지 하면서 자꾸 쟁여놓다 보니 결국 읽지도 않는 콘텐츠가 한가득입니다.
양보다 질,
저장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콘텐츠를 추려서 내 것으로 소화하는 연습인 것 같아요. 그렇게 추려낸 콘텐츠를 곱씹어보면서 나의 방식으로 재생산해보는 거죠. 요가 수련의 감상 중에서 정말 소중한 배움과 깨달음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듯이요.
곤도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요가 수업을 가기 전 캘린더를 보면서 설레지 않는 일정들을 꼽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어 수업을 다음 달로 미루고, 이번 주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취소도 하고요. 요즘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다 보니 이따금 만남 디톡스도 필요하구나 싶어요.
무한하지 않은 나의 에너지를 어떻게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부지런히 점검하는 중입니다.
무소유를 실천하기에는 이 세상에 노출된 정보와 콘텐츠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가진 것과 비교를 안 할 수가 없고,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욕망하게 됩니다.
최신 전자기기, 더 좋은 회사, 더 괜찮은 사람과의 연애 그리고 결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환상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내가 갈망하는 이상과 맞닿아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보다 별로일지도 모르죠.
“이왕 비교를 할 거면 끝까지 파고들어 비교해 봐라”던 멘토님의 조언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것을 손에 넣는 것보다 비우는 일이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것’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꽉 쥐고, 내려놓지 못해 괴로울 지도 모르죠.
더 채우는 대신 덜어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