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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키 Okeiki Nov 22. 2024

8. 나 원래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케이키 - 카후나의 난임일기

차수가 쌓이며 잔뜩 날카로워졌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누적되는지 갈수록 예민해졌다. 

작은 말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며 자주 신경질이 났다.


나 원래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명랑하고 생의 활기가 있던 사람이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진짜 맞나 보다.


유감스럽게도 난임은 당신의 침착한 성품을 엉망으로 만든다. 난임약과 좋지 않은 소식으로 기분이 변덕스럽고 불안정하게 되어 무슨 일에서든 과민반응을 나타낸다.

_ 앨리스 도마,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


시험관 7차 결과를 듣는 날. 

문을 열고 진료실로 들어가며 주치의 선생님 눈치를 살폈다. 이제 선생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5일 배양 배아가 하나 나와서 pgt 검사를 보냈는데, 안타깝게도 비정상이었어요.”


1층 카페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마주했다.  몇 주간 마음속에 흐르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집어치울까? 그만 하는 게 어때?, 앞으로 열 번, 백 번을 더 한다 해도 실패만 할 것만 같아. 안 되는 걸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남의 일처럼 성의 없이 찍찍 말하는 내 모습. 스스로  이건 아닌데 싶었다.  


오랜만에 아빠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맛있는 걸 먹으며 다 잊어버리자 싶어 좋아하는 일식을 골랐다. 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버렸는지  좋아하는 새우튀김도 광어회도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니었다. 


‘어쩌겠어. 그래도 먹어야지’하며 겨우 음식물을 삼키고 있었다. 매운탕을 먹을 때쯤 아빠가 남편에게 한국어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아이를 가르치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남편은 독일 사람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중입니다.) 


말투가 남편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사납게 나왔다. 세게 반응할 말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노려보는 눈으로 신경질을 빽하고 부렸다. 아빠는 말투가 그게 뭐냐며 숟가락을 집어던졌고, 그런 아빠에게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 험한 표정과 더 큰 소리로 맞섰다. 일식집의 얇은 벽 뒤로 옆방의 사람들이 숨죽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씩씩거리며 한잠도 못 잤다.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도 모르고 눈물이 목뒤로 계속 넘어갔다. 왜 우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둑이 무너져 버린 것 같이.


아빠랑 밥 한 끼도 웃으면서 먹지 못하는  사람이 되다니, 이러다 완전히 나를 잃으면 어쩌지? 과도하게 날이 서고 예민해지는 스스로가 무서웠다. 일단 문제를 인지했으니, 미봉책이라도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검색창에 ‘심리 상담’이라고 입력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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