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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키 Okeiki Oct 29. 2024

6. 촉각의 기억

오케이키 - 카후나의 난임일기

(5. 시험관 3차를 통과하면에 이어서)


의사 선생님이 목 투명대가 두꺼운 편이라며 융모막 융모 검사*를 권하셨다. 그다음 주 유명하다는 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받았다. 검사 후 유산의 위험이 약 1~2%로 보고되고 있는 침습성 검사라 걱정했지만, 안전하고 빠르게 끝났다. 


*융모막 융모 검사는 임신 10~13주 사이에 복부 또는 자궁경관을 통해 태반 조직을 채취하여 염색체를 분석하고 질환을 검사하는 방법입니다. 초음파를 영상을 보면서 작은 튜브를 자궁경부 혹은 복부를 통해 삽입하여 태반 조직의 일부를 채취하고, 채취한 조직을 배양하여 염색체 이상을 확인합니다. (출처: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국가건강정보포털)


의사 선생님이 최대한 빠르게 늦어도 오늘 저녁까지 검사 결과를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긴장은 되었지만, ‘지금까지 건강했는데 별 탈이 있겠어’, 배를 쓰다듬으며 혼자 괜찮다고 소리 내서 여러 번 말했다.


정확히 오후 5시에 전화가 왔다.  

“염색체 이상이 있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의 여자는 건조하게 사실만을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뭘 들은 거지? 방금 일어난 일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간절하게 열망한 임신이었는데 내 선택으로 종결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참담했다. 


그동안 초음파를 보며 아기와 사랑을 쌓아온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밤새 울었다. 아니 울부짖었다. 그러면서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검색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이렇게 간단하게 무너질 수 있구나, 

인생은 정말 무른 것이구나.’  


도와줄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을 겨우겨우 찾아내 다음 날 아침 상담을 받았다.  

낳아야 한다고 했다.  

아기가 수술하기에는 아기는 뼈도 다 자라고 너무 크다고 했다. 수술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아기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수술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온 몸과 정신이 수만 개의 바늘에 찔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나를 도와줄 수 있지만 당장은 어렵고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 일주일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작별해야 할 사랑하는 아기를 뱃속에서 키우며 임신이 종결될 날을 기다리는 그 7년 같았던 7일.  


아기와 작별하는 날.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야만 하는 당일 아침이 되었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일까. 단단한 마음이 올라왔다. 물 한 잔 마실 힘도 없었는데, ‘그래, 병원에 가자’는 생각을 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겼다. 남편을 지키자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작은 용기가 났다. 이걸 용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궁을 수축시키는 약을 받아 목구멍으로 넘기던 순간이 생생하다. 아기에게 해로운 것은 하나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커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그걸 목으로 넘기려는 순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진통은 10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이지만, 출산도 아닌 유산으로 땀범벅이 되어 침대 모서리에서 구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에게 나가 있어달라고 말했다. 


그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진통제를 달라고 말을 꺼냈다가 간호사 선생님에게 혼이 나니 서러움이 배가 되었다.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자세를 찾아 봤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자세를 찾아 봤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에라, 그러면 피하지 말고 차라리 고통으로 들어가자’, 하고 아픈 것을 전부 세세하게 느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의외로 미묘하게 덜 아픈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더는 못 참겠다, 이대로 죽을 수 있겠다 싶었다. 배 안을 믹서로 돌리는 게 아닌가 싶은 통증이 오고, 바로 이어진 감각. 무언가, 아니 아기가 몸 밖으로 나오는 촉각. 


그 순간 충격을 받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숨이 통제되지 않았다. 과호흡이 온 것이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 어깨를 잡아 눈을 맞추며 함께 숨 쉬기 시작했다. 들숨, 날숨. 함께 숨의 보조를 맞춰주었다. 


“이러다 큰일 나요. 정신 차리세요.” 세 명이 번갈아 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휠체어에 앉으라고 했다. ‘아기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앉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150센티나 될까 하는 작은 체구였는데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60킬로도 넘는 내 어깨 밑으로 팔을 넣어 나를 숙 일으키더니 휠체어에 태우고 처치실로 데리고 갔다. 그사이 나는 계속 과호흡 속에 있었다. 쉬지 않고 흐르는 눈물이 가슴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병실로 돌아와서는 더 참담했다. 진통이 끝나고 몸이 편해지니 배가 고팠다. 긴장과 통증으로 24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한 상태. 병원에서 미역국에 고봉밥을 줬다. 밥 한 톨, 콩자반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는 내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때 우연히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정확히 뭘 느껴야 할지도 몰랐다. 처참하게 슬프지만 안심도 되었다. 처리할 수 없이 한 번에 많은 감정이 몰려와서 상황 파악도 못 했다. 그래서인지, 이 시간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엉켜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주말을 맞아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았다. 유산 소식을 전한 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걔들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미웠다. 용용 죽겠지, 놀리는 것 같았다. (물론, 제가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랬겠죠. 친구들이 무슨 잘못이겠어요.)  


반면, 친구 J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없이 30분 넘게 울었다. 자기 일처럼 슬퍼해 주었다. 죽음을 애도해 주었다. 그 눈물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내 안의 슬픔이 몇 조각이 평화롭게 날아간 것 같았다. 


임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임신하면 출산하는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 유산은 무척 흔한 일이었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기적적으로 두 세포가 만나고, 건강하게 분열해, 280일 동안 자라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다. 


모든 생명은 절대 하찮지 않다는 것. 기적적인 일이라는 것. 이 경시되기 쉬운 메시지를 내 산도를 통과해 죽은 아기가 내 몸에 촉각으로 새겨주었다.  


아기가 가르쳐 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먼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내가 보였다. 나는 지구에 사는 아주 많은 사람 중 그저 그런 한 사람 아닌가,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다. 우리가 모두 소중한 존재예요, 라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거짓말’,이라고 바로 말하는 나였다. 


유산 후 다른 생각이 깃들었다. 태어나서 엄마처럼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는 건 정말 기적적인 거라고, 떠난 아기가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시선으로 내 주변도 보게 되었다. 길을 걷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희박한 확률을 뚫고 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 세상에 도착한 생명들인지 감격스러운 지경이 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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