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이라 말하고 싶다
눈이 내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땅에 닿기도 전에
내 머리 위에 먼저 살포시 앉는다.
봄 같은 아이였을 때에는
눈과 같이 뒹굴며 놀았기에 내 머리 위에 앉을 새도 없었다.
여름 같은 청년이었을 때에도
눈과 같이 뛰어다니며 즐겼기에 내 머리 위에 앉을 틈이 없었다.
뒹굴지도 뛰어다니지도 않는, 아니 못하는 지금.
내 머리 위에 살며시 앉기에, 말없이 떠날 줄 알았는데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곳을 만난 듯 주저앉아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한 올, 한 올 하얗게 물들이더니
마치 눈밭처럼 만들어 버렸다.
계절의 오고 감을 무시한 채
내 머리 위에는 한 달에 한 번 겨울의 눈이 찾아온다.
녹이고 녹여도 어김없이 쌓이고 또 쌓이는 흰 눈.
나의 계절은 겨울인가?
설령 겨울이라 하여도 차마 겨울이라 말할 수 없어
나는 가을이라 말하고 싶다.
봄도 여름도 결코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