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소리, 청년들의 목소리
올해 우리나라 여름은 평년보다 더 빠르게 4월부터 찾아와 11월까지 더 길게 갈 거라고 한 기후학자가 올여름 날씨에 대하여 전망하면서 우리나라 기후도 아열대에 가까워졌다고 전했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무색할 만큼 봄인 듯, 겨울인 듯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 4월을 맞이하였다.
겨울의 마지막 발자국이 문턱을 넘어가지 못하고 문틈에 끼여 그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간간이 불어오는 듯 하다.
출퇴근길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계절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도 옷깃을 여미며 퇴근길 버스의 앞 쪽 좌석에 앉았다.
피곤함에 눈을 감고 있었기에 타는 사람들을 전혀 보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아기 소리가 났다.
우와! 이 귀한 생명의 소리를 얼마 만에 들어보는 것인가!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아기의 소리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아기의 엄마가 "쉬~ 쉬~" 하면서 아기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는 듯했다.
크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더구나 소음도 아닌데 왜 조용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데 잠시 후,
아기는 "으앙~ 으앙~" 울음소리를 한 번 내더니 다시 조용해졌고
그다음 정거장에서 그 젊은 부부는 하차를 하였다.
한낮의 해가 저문 오후
동네 골목마다 아이들이 많았다.
키가 크고 작고,
힘이 세고 약하고,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놀았다.
그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소중한 동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막 한 발짝 내딛거나,
언니나 누나의 등을 빌려야만 하는
아주 작은 아이들.
저녁 즈음
아주 작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네는
아주 살맛 나는 세상이었다.
이 살맛 나는 세상에
나의 동생도 한몫하였다.
나 역시 동생에게 등을 많이 내주었었다.
그런데 요즘
아주 작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는커녕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아주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아주 작은 아이들을 보게 되는 행운을 맞이하면
나는 넋 놓고 바라본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인 동시에
그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목소리 역시 그렇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세상 탓만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청년들을 보게 되면
내 아들, 네 아들 구별하지 않고
모두 대견해 보인다.
힘찬 목소리, 환한 목소리를 들을 때
나도 같이 에너지가 생기는 듯 신이 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 자녀들이
그 자녀들의 자녀들이
희망을 꿈꾸고 이룰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고 또 바랐지만
지금의 아이들과 청년들을 보면서
면역력이 생기기도 전에
상처부터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제라도 삶은 고통만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라도 상처는 함께 치유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아픈 후에는 성장도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날이 오겠지?
아니 와야 한다. 반드시 와야 한다.
(2024년 2월 22일 서랍 속 이야기를 꺼내다)
(사진 출처 : Jinip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