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0
평산리 이야기를 해본다. 작년 남해 여행 때 드라이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멋진 동네가 이곳 평산마을이다. 비탈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은 이국적이고 평화롭다.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 이쁘다.
그곳에 머물러 보고 싶던 참에 발견한 참한 게스트하우스 '생각의 계절'. 오… 이름도 운치 있지 않은가? 인터넷 평을 보니 극찬 일색이다.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는 마을과 바다 풍경이 마치 유럽에 있는 것 같다는 둥 말이다. 기대감에 이곳 평산리에서 사흘을 지내본다.
남해읍에서 남면에 들어서면 아난티 골프장을 지나 언덕을 올라오면 여수를 바라보며 멋지게 자리 잡은 평산마을이라는 곳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여기서 세 밤을 보낼 예정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도시인들의 마음을 휘어잡기 충분하다. 바닥에 싱글 매트리스를 놓은 방은 좁은 듯 하지만 청결의 끝판왕이다. 너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여기는 고양이 천국이다. 온화한 주인이 밥을 주고 거두어주니 동네 고양이 세 가족이 여기 둥지를 틀었단다. 새끼 고얌이들의 어설픈 움직임이 너무 귀엽다. 모든 새 생명은 어찌 이리 아름다운지. 문 앞에 모인 녀석들을 밀어내며 나들어야 한다. 익숙친 않지만 금방 적응한다. 이제 고양이들은 나의 며칠 이웃이 된다.
이 천 원이라는 감사한 가격에 조식을 제공한다. 그것도 한 번은 무료다. 10시 이전 희망하는 시간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준비해 준다. 이곳의 1층은 카페다. 숙소인 2층에서 내려오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여수를 바라보며 서쪽 사면에 위치한 평산리는 오전에 그늘이 진다. 뒤쪽에서 바다를 향해 비추는 순광 방향 빛 때문에 오전의 모습이 압권이다.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만끽하고자 마당에 앉아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는다. 입에는 꿀맛, 눈에는 꿀경치다. 아. 힐링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식사 중에도 고양이 녀석들이 근처에서 잔망 거린다.
서쪽 향이다 보니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하늘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오후 내내 기운 해가 뜨겁게 내리쬐다가 저 바다 너머로 넘어간 순간부터는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 눈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거실 창 밖으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2층에는 숙소 방이 네 개 있다. 가운데 거실은 공용공간인데 식탁 테이블 위에 노트가 두 개 항상 사진처럼 놓여있다. 다녀간 이들이 자유롭게 글을 써 놓는 노트다. 지난 10년 간 노트도 싱크대 옆에 놓여 있어 언제든 다녀간 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호기심에 펼쳐 본 글들은 모두 아련하고, 안타깝고 따듯했다. 이렇게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를 다니는 분들의 여행 취향과 이야기들은 대체로 결이 비슷한 것 같다. 삶의 '추구미'가 유사하다 싶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곳에 사람들의 이야기는 켜켜이 쌓여 있는 것 같은 대비가 좋다. 여긴 참 따듯한 곳이다. 사람 느낌이 나는 곳이다. 저기 보이는 아난티 펜트하우스에서 즐기는 자본주의 휴가도 좋지만, 이런 로컬의 속살로 들어와 보내는 시간은 더 만족스럽다.
해가 뉘였 해질 즈음 귀가 길에 평산항을 들러본다. 작은 어촌 마을 그 자체다. 배 두어 개가 조업을 나가는지 통통거리며 항구를 떠난다. 횟집들이 있는데 검색해 보니 가격이 무척 비싸다. 자연산이라 그런가? 가볍게 한 끼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한산하고 아름답다.
마을 높은 곳에 오래되어 보이는 교회가 있다. 숙소의 옆옆이다. 이런 시골 교회들은 항상 정겹다. 수요일이라 평산항 산책 후 올라와 수요예배가 있는지 확인해 보니 8시부터 예배가 있다. 숙소로 가서 조금 휴식하다가 교회로 갔다.
교회 입구에 이곳이 100년이 넘은 교회라는 것을 알리는 기념비가 있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라… 왜 그리 지나다니는 동안 이 교회가 눈에 들어왔는지 수긍이 간다. 역사와 시간은 에너지가 되고 그 기운은 선하고 인상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비교적 젊게 느껴지는 목사님과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 몇 분들과 함께 수요 예배를 드렸다. 이런 시골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더 경건하고 은혜롭다. 목사님 기도가 뭉클하게 남아있다. 이 교회 성도님들의 온전한 정신이 더 오래 지속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한분 두 분 기억과 정신을 놓으시는 분들이 많단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수요일에 체크인했다. 이곳 마을에서는 유유자적 한가로이 쉬는 것이 콘셉트이다. 그래서 목요일 오후엔 이 동네 머물며 하루를 보내본다. 마을 정상에 전망 좋은 근사한 정자가 있어 쉬기 좋다. 돗자리를 깔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후 시간을 한가하게 보낸다. 에어컨 밑만큼 시원하진 않지만 도시의 찜통 같은 열기는 없으니 살만하다. 눈이 시원하니 몸도 조금은 덜 더워하는 것 아닐까.
누워서 휴식을 하다가 잠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던 중 일하러 올라오신 어느 어르신이 아는 척을 하신다. “어제 교회에서 뵜었죠?”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중 어르신의 입담이 폭발하셨다.
평산리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열변을 토하신다. 재미있는 평산리 스토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듣는다.
평산리는 조선시대 남해의 군청이 있던 최초 거주 중심지다
전라도 장흥에서 대나무 엮어 출발한 유배자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이곳이다. 무인도 남해에 최초로 사람이 들어온 곳이다.
평산교회는 남해 최초의 교회다.
평산 출신 선조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일본에 문서로 알렸다
그런데 평산은 그런 역사 자산을 알리지 못해 안타깝다.
군청에 얘기해 봤지만, 공무원들은 안 움직인다.
100집 정도에서 자녀들을 키워 외지로 약 500명가량 자녀들이 외지로 나갔는데, 그중 두 명만이 귀향했다. 그중 하나가 본인이고 다른 한분은 소천하셨다
이장 재임 시 오렌지색 지붕개량 사업을 추진했으나 협조 안 하고 검정 기와 하겠다고 한 사람들 때문에 골치 아팠다
시골 동네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옆 동네에서도 간섭한다.
이장 재임 시 50억 지원받아 동네 길을 넓혔다.
마을 어르신들이 자꾸 돌아가셔서 인구가 준다.
당신이 교회 막내시란다.
목사님한테 아무 말하지 마라 당신이 단속했다
밑에 딸 집을 하나 사줬다. 가끔 오고 비어있다. 렌트 가능하니 목사님께 연락하라. 나와 딸의 연락처를 아신다
등
주로 평산리에 대한 역사와 자랑, 본인의 업적 등 백과사전 식 정보였다. 현지인들의 현지 이야기는 생생하다.
저녁에는 1층 카페에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대화를 하게 된다. 재밌고 놀라운 사실들에 깜짝 놀란다. 여기에서 숙소를 운영한 지 10년 정도 되셨다. 젊은 부부인데 일찍도 색다른 용기를 낸 것이 놀라웠다.
그런데 얘기 도중 우리가 서울 같은 동에 오래도록 같이 살았음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반가워한다. 어느 순간 지나치고 부딪혔을지도 모르는 이들이 이렇게 남해 마을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It"s a small world. 아내 분과 서울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이야기, 대략 그려보는 다음 계획의 얼개 등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편히 나누고 굿 이브닝 인사와 함께 휴식을 취한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가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는 것 아닐까. 나는 주저거리며 못한 결정을 한 용기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이와 상황을 떠나 부러운 존중감을 느낀다. K는 여행과 휴가를 통해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고급 리조트에서 비싼 서비스 친절을 받는 것보다 더 즐겁고 값어치 있어한다. 싼 취향을 가져 다행이다.
사흘 평산마을에서 차분한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