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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옥 Oct 30. 2022

구옥살이 14일 차

드디어, 침대

이사를 시작한 지 14일 만에 드디어 침대가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한 달 보름이 되어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가 배송 오는 날 아침에 "오늘 간다."하고 통보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기다리고 기다리던 침대였기에 스케줄을 조정해서 설치기사님을 맞았다. 


상품평에 달려있던 그대로의 제품이었다. 

슈퍼 싱글 사이즈 프레임의 안쪽이 모두 수납 형태였고, 정면에서 침대를 바라보게 되는 전면에도 서랍과 선반과, 여닫이 수납장이 있었다. 침대에 눕기 위해 올라가는 세 단 정도의 계단마저도 서랍식의 수납공간이라 계절 옷부터 이불, 속옷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분류해서 보관 가능한 디자인이었다. 



윙타입 테이블은 고양이가 아주 좋아한다



내가 이 침대를 차마 취소하지 못하고 계속 기다렸던 진짜 이유는 수납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단의 상판이 스윽 90도 회전을 하는 윙타입 구조라서 베드 트레이처럼 활용할 수 있는 형태라는 점이 더 결정적이었다.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을 철저히 분리해야 작업 효율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가끔 게으르게 뒹굴거리면서 일하고 싶기도 하더라고. 


사람이 문제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제품이 아무 문제없이 배송부터 설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면 참 좋았으련만. 나의 구옥살이는 침대 설치마저도 결코 쉽지 않았다. 

기사님은 방이 좁다고 시작부터 끝까지 투덜거리셨고, 냉장고와 정수기와 내 컵을 한마디 양해도 없이 이용하시면서, 새로 칠한 흰 벽에 시커먼 스크래치를 낸 데다가, 침대 프레임의 한 귀퉁이를 파손하셨다. 

그래 놓고 설치하는 방이 좁아서 벽도 긁고 프레임도 찍었다며 내게 화를 내시면서 멋대로 퇴장하시더라고.

 

이게 무슨 돼먹지 못한 인성인가 싶어서 당황했다가, 설치기사님이 소리를 지르든 행패를 부리든 그냥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보낸 이유는 하나였다. 하는 상태를 보니 말을 해도 통할 상대 같지 않아서. 이미 작은 방 사이즈에 꽉 맞게 조립을 다 끝냈는데 다시 해체해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가. 


답 안 나오는 상황을 마주하자 '내가 험상궂게 생긴 47세 중년 남성 곽길용 씨였어도 저 기사님이 이따위로 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좀 씁쓸해진 게 전부였다. 

업체에 이 날의 배송 상황을 전달하면서 항의했더니, 이미 설치하고 배송받은 걸 어쩌냐는 식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판매자의 모습에서 조금 많이 씁쓸해졌다. 


설치형이나 배송형 가구, 가전의 경우에는 어떤 기사님이 걸리는지까지가 만족도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데... 대기업이 아닌 이런 중소 업체들은 클레임을 걸 곳도, 걸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게 참 불쾌할 뿐이다. 





찍힌 곳을 볼 때마다 속에서 욱하긴 하지만 제품만 놓고 볼 때엔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은 침대였다. 짐이 굉장히 많은 편이지만 밖으로 내놓기보다는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는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는 수납공간이 특히.  


사실 침대 프레임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급한 대로 접이식 토퍼를 집에 들였었다. 아무래도 접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나처럼 허리 부실한 사람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수면의 질이 아니더라고. 이 접이식 토퍼는 평소에는 접어서 미니 소파처럼 사용하다가 손님이 오면 간이침대로 펼쳐서 아주 요긴하게 활용 중이다. 


설치 과정과, 설치 상태가 어이없지만 않았어도 마르고 닳도록 기분 좋게 쓸 수 있었을 텐데.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어서 더 아쉬움이 남는 침대 설치 기념일이었다. 


앞으로 집을 집답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 설치기사님보다 더한 진상은 만날 일이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누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 14일 차 장비 ::

청소용품 : 핸디 청소기 교체용 필터

생활용품 : 접이식 토퍼, 좌식 의자 한 쌍, 1구 인덕션과 냄비&프라이팬 세트, 멀티탭 3구 5m짜리 하나 & 1.5m짜리 두 개

생존용품 : 침대



:: 14일 차 교훈 ::

더럽고 치사한 일이 생겼을 땐 단 걸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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