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와 방짜유기
방짜유기를 방치하면 공기 중의 습기와 이산화탄소가 유기의 주성분인 구리와 반응하여 표면에 독성을 띠고 있는 초록색의 녹이 만들어진다. 청색 또는 녹색의 안료(顔料)로 사용되는 이 녹청(綠靑, verdigris)은 구리(Cu)에 낀 '녹'을 주원료로 하고 있다. 암록청, 암군청, 또는 군청이라 불리는 이 안료를 서양에서는 말라카이트(malachite), 마운틴 그린(mountain green)이라 부르고 동양화에 사용되는 유일한 녹색안료였다.
구리(Copper)는 비철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금속으로 현대산업사회에서 전기, 전자는 물론 IT 및 다양한 산업에서 금, 은 다음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Chalkos”, 로마에서는 “Cypriumaes”로 불리다 후에 “Cuprum”으로 알려져 왔다. 이와 같은 명칭의 유래는 지중해의 사이프러스(Cyprus)에서 많이 출토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순 구리 자체로 사용하기보다는 합금을 통하여 다양한 성질로 개량하여 사용되며, 대표적으로 Brass(황동)와 Bronze(청동)가 있다. 금관악기(brass instrument)를 브라스라고 통칭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금관악기가 황동의 금색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론즈는 청동 또는 청동 제품을 의미하지만, 모든 청동조각상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다.
충청도 사투리에 아주 좋은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이르는 '방짜'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유기그릇을 방짜유기라고도 한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22로 합금하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불에 달구어 가며 두드려서 만든 그릇으로 주물그릇과는 다르고 주로 놋그릇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한, 징이나 꽹과리 등 우리의 전통 타악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리 및 구리합금에 생기는 부식물인 녹을 녹청(綠靑, verdigris)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기 중의 이산화황(SO2)이나 황화수소(H2S)에 의하여 생기지만, 철의 부식물과는 달리 구리의 표면에 생기게 되면 오히려 내부가 잘 침식되지 않게 만드는 장점이 있어 중세시대 건축물의 돔(dome) 지붕에 많이 사용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의 역사를 가진 구 서울역사의 지붕이 대표적인 구리판으로 씌운 녹청색의 돔 지붕이다.
녹청은 구리에서 얻어지는 아세트산구리의 염기성염 청색 안료로 물에도 일부 녹으며, 독성이 있어 배 밑에 바르는 도료나 살충제로도 쓰이고, 목조건물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단청에서의 녹색 안료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녹청은 독성이 낮아 사람에게 해를 입힐 정도는 아니다.
암녹색의 고풍스러운 중세시대 궁전의 돔 지붕 위로 비가 내리게 되면, 구리판 위의 녹청이 녹아내리게 되는데, 이 빗물은 처마를 타고 궁전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바리케이드를 치듯 마당에 흘러내리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빗물에 녹아든 녹청의 유독성 때문에 해충들이 궁전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의 방짜유기는 보온성이 탁월하여 식기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제독살균성이 있어 우리의 선조들은 놋그릇을 채소를 씻는 물에 담가두어 살균을 시켰다고 한다. 실제 한 실험에서는 일반 그릇과 놋그릇에 같은 조건의 음식물을 보관한 후 부패정도를 실험하였는데, 놋그릇이 월등한 보관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과학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