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공놀이를 하자고 한다. 뭔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자꾸 투정을 부리다 힘껏 공을 던진다. 공은 엉뚱한 쪽을 향하였고, 하필 그곳에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몇 년을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것인데 좀 전에 아이가 그곳에 올려 놓았다.
웬일로 공놀이를 하자고 하더니, 아빠를 향해 던지다 실수를 했고, 그 공이 하필 유리병을 향했으니 이 정도 우연이면 별로 억울하지도 않다.
바스러진 유리 파편들을 넋 놓고 쳐다보았다. 불리한 분위기를 직감한 아이는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입을 굳게 다문다. 쓸고, 닦고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그제야 아이의 짠한 얼굴이 보인다.
“미안해. 다신 그러지 않을게”라는 아이의 말이 못난 아빠의 폐부를 찌른다. 누가 보면 화만 내는 아빠인 줄 알겠다. 이젠 많이 커서 분위기 파악도 하고 필요한 때에 적절한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기특하다.
유리가 깨졌을 때 솔직히 욱했으나 이건 실수한 것이라 딱히 화낼 일도 아니다. 아이를 안아주며 굳은 얼굴이 말랑해질 때까지 잘 타이른다.
어렸을 때 사고를 쳐서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운하고 원망했는지 모른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 부모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 그게 다였다. 다만 내 아이는 그런 기억이 나보다는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 화를 내지 않은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곱디고운 이 아이는 오늘 밤 어떤 꿈을 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