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굿바이 기도를 해주면 아빠로서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이때가 대략 9시쯤 되는데 나는 고민에 빠진다. 운동을 갈까? 달리기를 할까? 타이밍상 달리기를 하면 딱인데 하필 날씨가 춥다. 내일 날씨를 보니 오늘보다 4도나 높아지는데 내일......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낭만러너가 떠올랐다. 비계공 일을 하며 안전화를 신은 채 달리는 해맑은 사람. 그렇게 낭만을 채우러 옷을 주워 입었다.
다행히 많이 춥지 않았다. 러닝 붐인 건 확실하다. 예전이면 사람 찾아보기가 힘들 시간이지만 혼자 뛰는 사람, 무리 지어 달리는 사람,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난 적당히 달리자 주의였다. 그러다 러닝 붐에 편승하여 거리도 늘려보고 기록도 욕심내 보았는데 어느 순간 달리기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본질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어 다시 방향을 고쳐 잡고 10km를 한 시간 내에 달리는 것으로 기준 삼아 꾸준히 달리고 있다.
여름철 달리기는 정말 힘들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땅에서 올라오는 열에 몸 온도가 더해지면 이렇게 달리다 녹아 바닥에 붙어버릴 것만 같다. 이럴 땐 한 시간을 넘겨도 스스로를 용서한다. 이 날씨에 달리는 것도 용하다며 아껴준다. 조금만 욕심을 내면 정말 머리가 핑~ 돌고 벤치에 큰대자로 뻗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본질을 흐리는 달리기다.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달리기 참 좋은 계절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왠지 네가 살고 있는 나라일 것처럼 높고 푸르다. 끈적임 없는 상쾌한 공기에 땀이 적당히 흐르면 여름철 고난의 달리기를 보상받는 느낌이다. 다만 예쁘게 펼쳐진 가을 경치를 보지 못하고 아이를 재운 뒤 밤에 뛰어야 한다는 게 아쉽다.
무엇이든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 지는 법인데 기능을 필요로 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꾸준히 달리는데 날씨가 좋아지니 의도치 않게 기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욕심을 내어 기록에 도전해 보고 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건강히 즐겁게 달리는 것이다. 기록 욕심에 다치기라도 하면 이 좋은 것을 쉬어야 한단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몸의 변화가 느껴진다.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왔더니 햄스트링이 묵직하다. 어렸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통증이다. 어제도 달리면서 허벅지 뒤에 느낌이 오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무리하지 않고 만족스럽게 10km를 마무리했다.
아침에 수업을 위해 4층까지 계단을 오른다. 난 아직 청춘이라며 항상 계단은 두 칸씩 오른다. 4층에 오르고 보니 숨이 가쁘고 허벅지 뒤가 뻐근하다. 갑자기 마주친 여자 선생님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밝게 인사했다. 숨은 인사하고 쉬면 되니까.
늙는 게 조금 서럽긴 하다. 이것저것 찍어 발라보기도 하고 좋다는 것들 챙겨 먹어도 보지만 백발을 막아보려 한들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찾아온다는데 무슨 소용 있겠는가. 다만 즐거운 달리기로 달려오는 늙음을 한 발 뒤에서 만나는 것 정도는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