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찬성과 에반’을 읽었다. 모의고사에 나온 작품인데 후배가 보낸 책에 그 작품이 있었다. 시험지로 읽었을 때도 마음이 아파 건조하게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작품을 온전히 읽으니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찬성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왠지 그런 아이가 주변에도 있을 것 같았고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외로운 처지의 찬성이와 에반이 서로에게 힘이 되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짠하고 뭉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을 감당해야 했을 찬성이의 슬픈 표정과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가운데가 묵직하게 아파 왔다. 에반은 잠시나마 찬성이 덕분에 행복했겠지? 순수한 찬성이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애썼다는 것을 알았을까? 어린 찬성이가 욕심을 참다 참다 결국 후회하는 모습이 귀여워 더 애잔하였다.
누구나 힘든 시절을 겪는다. 그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존재의 여부가 큰 것 같다. 곁을 지켜주는 가족,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위로가 되어 주는 음악.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존재감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그런 역할에 대한 소망이다. 국어 교사로서 글쓰기가 두렵지 않은 나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써 주고는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학생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감동했던 순간들 중 편지에 관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책을 보내 준 후배가 지역 신문에 칼럼을 쓰고 아침 라디오에까지 그 내용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편지 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도 그래 볼까 생각한다. 정성 들여 쓴 편지는 귀하다. 글쓴이의 마음과 노고가 담겨 있어서 그렇고 이젠 흔치 않은 일이라 더욱 그렇다. 귀한 만큼 받는 이에게는 큰 감동이 될 터이니 마음이 동할 때 주저 없이 편지를 쓰고자 한다. 정성스럽게 단어 하나하나를 고민하며 살뜰하게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