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건 고통스럽다. 안 고통스럽게 달리면 되지만 사내의 달리기란 그런 게 아니다. 심장이 가쁘고 다리가 터질 듯하고 땀이 용솟음쳐야 사내로서 조금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한번 달려볼까? 쾌히 마음먹기 쉽지 않다. 그래도 밖에서 달리면 좀 낫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풍경과 소리가 지루함과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위가 싫다. 오늘도 난 지루한 실내 달리기를 할 것이다.
기왕 하기로 마음먹은 거 손톱 거스러미만 한 의욕을 펌핑한다. 얘가 내가 아는 걔가 맞아 싶은 기록을 프사에 올린 내 친구, 기상 러닝 20km를 한 후 개운하다고 한 선배 교사를 떠올리며 각오를 다진다. 나도 오늘 한 번 러닝머신 방전시켜 보련다.
구석에 자리 잡고 나만의 페이스를 가져간다. 차분히 속도를 높이니 차가운 공기로 싸늘했던 등골 사이 어느덧 뜨거운 용천수가 솟아난다. 숨을 가쁘게 쉬면 러너로서 폼이 안 나지만 사랑은 숨길 수 없는 법, 러닝에 대한 나의 사랑을 가쁜 숨으로 고백한다.
사점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육체를 마비시키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인류는 원래 하루에도 수십 킬로를 걷고 달리며 살아왔다. 다른 동물에 비해 보잘것없는 육체를 가졌지만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인류를 살아남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고, 맹수를 피해 미친 듯 뛰고, 물을 길어 먼 거리를 걸었던 그 DNA가 내 몸속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치지 않고 이 달리기를 완수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러닝머신은 나의 인생과도 같다.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벨트 위에 올려졌고 걷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질 수 없다. 어떻게든 이겨내서 웃는 자가 될 것이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을 해야 나의 달리기는 끝이 난다. 오늘도 역시나 방전은 내 몫이다. 사내의 달리기란 이런 것이다. 나는 풀코스를 뛰는 친구를, 기상 러닝 20km를 하는 선배를 이길 수 없다. 그냥 나는 나의 러닝을 할 뿐이다. 분명 나는 오늘 건강해졌다. 얼굴도 팽팽해졌고 저녁에 과식한 것도 죄사함 받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왔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는 게 러닝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 이런 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