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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Sep 06. 2024

몸과 질병을 대하는 마음

유전적 약점이 질병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은 아니다. 질병은 개인에 의해 결정된다. 스트레스, 불균형한 식생활과 생활 방식 그리고 독소에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 때문에 유전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는 어떤 장기, 조직 또는 기능이 먼저 양보할 것인가를 결정한다.(p.207) 안드레아스 모리츠, <건강과 치유의 비밀>


작년 여름 갑자기 아토피가 심하게 도졌다. 이유를 알 수도 없었고,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치유가 될지 알 수도 없으니 황망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갑자기 아토피가 도진 게 아니었다. 아토피 증상이 나타나기 몇 년 전부터 만성피로를 느꼈다. 잠을 자도 피곤했고 아침에도 개운치 못한 상태로 일어났었다. 크고 작은 염증이 계속해서 생겼었다. 손가락 끝에 무좀이 생겼다가 손가락에 사마귀가 생기기도 했고, 잇몸 염증이 생기거나 눈의 결막염이 생기기도 했다. 피부과와 치과와 안과를 돌아가면서 다녔다. 몇 달 동안 치과에서 잇몸을 치료하고 나면, 이어서 몇 달 동안 눈의 결막염 때문에 안과에 다니는 식이었다. 물론 병원에서 주는 약이라면 항히스타민이든 항생제든 생항생제든 뭐든 꼬박꼬박 먹었다. 왜 그렇게 자잘한 잔병이 끊이지 않는지 걱정하며, 질병이 얼른 떠나기만을 고대했지 내 생활습관을 되짚어보지는 않았다. 건강에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잔병치레가 귀찮게 여겨지기만 했을 뿐, 나 자신을 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고서야 몸에 아토피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당연히 불쾌한 마음으로 피부과에 다니면서 약을 먹고 발랐다. 어릴 때,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피부과 약은 더욱 걱정스러웠지만 속수무책 심각해지는 피부를 두고 약을 먹지 않을 수도 없었다. 피부과 약의 강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세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나의 생활습관과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피부로 심각한 증상이 드러나기 전부터 몸은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몸을 보살피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생활습관을 바꾸었더라면 지금은 다른 양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몸을 혹사할 정도로 일을 벌이고 지내다가 아토피가 도지면서, 비로소 나의 생활습관을 되돌아보았다. 아토피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대증치료 약(근본적인 치유와는 관련 없이 증상만 가라앉히는 약)만으로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불규칙한 생활습관에 기름지고 달콤한 공장에서 만든 음식과 자극적인 음료를 마시며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올라온 아토피가 심각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대증치료 약에만 의존하며 그 부작용을 더 심각하게 겪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방치료를 시작했고, 체질식을 몇 달간 했다. 몸이 (대증치료 약 없이도)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했고, 몸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자연식물식으로 체질식을 대체했다. 자연식물식은 체질식보다 더 엄격하지만 준비하기도 편하고, 먹고 나면 마음도 편안하고 만족감도 상당했다. 그렇게 시작한 자연식물식 기록이 오늘로 59일째이다. 그전에도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었지만,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했다면, 기록을 시작한 날부터는 의도적으로 자연식물식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식물식은 기본적으로 채소, 과일, 통곡물을 이용한 식이요법이다. 그 범위 안에서는 얼마만큼 먹든지, 얼마나 자주 먹든지 상관없다. (공장에서 만든 소스를 이용하지 않는) 건강한 샐러드 위에 생과일을 산처럼 쌓아 올려 두고 먹어도 괜찮고, 군고구마나 찐 옥수수를 얼마든지 먹어도 괜찮다. 다만 통곡물에서 추출한 기름이라도 공장에서 가공한 기름은 가능하면 쓰지 않기를 권한다. 실제로 자연식물식을 유지하다 보니, 식용유를 전혀 쓰지 않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소한도로 식용유도 사용했고, 김치나 겉절이에 들어가는 멸치액젓도 자제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통곡물 대신 백미로 밥을 지어 주식으로 먹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식물식이 30일 이상 넘어가면서부터는 가끔씩 치팅데이도 갖고, 가족들을 위해 준비한 육류 음식도 조금씩 맛을 보고 있다.


유연한 자연식물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몸과 마음의 변화가 확실하다. 몸의 자잘한 염증 반응이 사라졌고 덜 피곤해졌다. 어쩌지 못할 정도의 피곤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과도한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몇 번이나 시술을 받아도 재발하던 사마귀도 마지막 시술 이후에는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몇 달이나 안과에서 처방받은 항생제를 먹어도 낫지 않던 눈의 결막염과 이물감은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심하게 갈증을 느끼던 증상도 사라졌고,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직접적 계기가 되어주었던 피부도 빠른 속도로 치유되고 있다.


자연식물식 59일 차인 오늘은 점심에 외식할 일이 있었고, 메뉴는 채소가 잔뜩 나오는 소고기 월남쌈으로 정했다. 나는 물론 소고기를 건져 먹지는 않았지만, 소고기에서 우러난 육수에 채소를 데쳐서 먹는 것까지 피하지는 않았다. 유연하게 자연식물식을 유지하더라도, 내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으며 주식은 자연식물식을 유지하고 있다.


질병도 우리의 몸과 정신에 건강을 가져오고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행동에 의해 사라진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즉 질병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꿈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불행해진 것을 질병 탓으로 돌리고, 그것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의 건강에 위기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다.(p.19) 안드레아스 모리츠, <건강과 치유의 비밀>



* 표지 사진 : UnsplashMordo B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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