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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일째의 자연식물식

by 소미소리

소고기미역국은 엄밀히 말하면 자연식물식 음식은 아니다. 자연식물식은 채소, 과일, 통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이니, 소고기가 들어간 국은 당연히 자연식물식에 포함되지 않는다. 채수에 미역만 넣고 끓이거나 미역국에 감자나 마늘만 넣으면 자연식물식 음식에 부합하겠지만, 가족들이 함께 먹을 반찬을 만들 때에는 종종 고기를 사용한다. 고기반찬이 없으면, 더 가공된 식품을 찾는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으니,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한 가지라도 묵직한 반찬을 만드는 게 낫다.


소고기 국거리(양지) 한 근을 한 시간 정도 삶았다. 냄비에 물을 넉넉히 넣고 삶다가 물이 너무 졸아들었다 싶으면 중간중간 물을 더 넣어주면 된다. 소고기가 삶아지는 동안 미역은 불려 놓는다. 소고기가 삶아지면 한 김 식혀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다시 냄비에 넣고, 불려 둔 미역도 빠득빠득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냄비에 넣고 20분 이상 끓인다. 처음엔 센 불을 쓰지만, 끓어오르고 나면 중 약불에 설설 끓인다. 간은 굵은소금과 멸치액젓을 사용했다. 파나 마늘은 넣지 않았다. 미역국은 조금씩 끓이는 것보다 한꺼번에 많이, 그리고 오래 끓이는 게 더 맛있다. 그래서 한 번 끓일 때, 여러 번 먹을 양을 끓이고 (한 김 식고 나면) 절반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있다. 냉동실에 넣어 둔 미역국은 몇 주 정도 지나고, 다시 미역국이 생각날 즈음 꺼내서 뜨끈하게 데워먹으면 좋다. 가족들은 고기가 많은 쪽을 퍼주고, 내 것은 미역 위주로 담았다. 미역 위주로 담아도 미역 사이에 들은 고기들은 다 골라내지 못했는데, 내 그릇에 들어온 고기는 그냥 먹었다. 유연한 자연식물식을 하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에 편하다. 소고기는 오랜만에 먹었는데, 이전에 소고기를 어찌 그리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고기 맛을 모르겠다. 채소나 과일의 향긋하고 아삭아삭한 맛에 비하면 소고기의 기름지고 퍽퍽한 맛은 그저 내 그릇에 있으니 씹어 삼키는 정도이지, 일부러 찾아 먹고 싶은 맛은 아니다. 국은 기름지지만, 물김치와 삼삼하게 담가둔 열무김치, 그리고 짭짤한 무생채와 어머니가 주신 파김치까지 있으니 따로 나물반찬은 무치지 않아도 자연식물식 식탁이 잘 차려졌다.


자연식물식 99일째다. 내일이면 100일이 완성된다. 처음에는 30일도 큰 목표였는데, 하다 보니 어느덧 100일이다. 며칠 전에 경포에서 마라톤을 했다. 10킬로를 신청하고 나갔는데, 5킬로 반환점에서 5킬로 주자들을 따라서 돌아올 뻔했다. 멀리서 반환점을 보고는 당연히 10킬로 반환점일 거라고 혼자 오해를 했기 때문이다. 이정표를 본 뒤의 실망감이란…. 다시 힘을 내어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니, 다시 금방 10킬로 반환점에 도달했다. 사실 5킬로 마라톤은 전에도 해본 적이 있으니 5킬로까지는 별로 도전도 아니다. 반환하고 돌아 나오면서부터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뛰는 둥 마는 둥 걷기도 하면서, 조금씩 이동했지만 고관절은 아파오고 더 이상 힘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잘 관리된 날쌘 몸매에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이 힘차게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보니까 하프 주자들이다. 그들의 에너지를 받아 나도 덩달아 달렸다. ‘올커니, 잘 됐다. 앞에 가는 저 분홍색 민소매의 아저씨를 목표로 달려보자. 저 아저씨가 뛰는 동안은 뛰는 거야.’하면서 꽃분홍 나시를 입은 하프 주자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그 꽃분홍 아저씨는 그만 내 앞에서 멈추더니 걷기 시작했다. 망연자실, 그 순간 나는 혼란 속에서 이후의 달리기 전략을 다시 짜야만 했다. 자연식물식은 처음에 30일이라는 작은 목표로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억지로 꾸미지 않았다. 그저 나의 속도, 나의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실천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도 편하고 자연스럽게 100일이 다가온다. 온전히 나만의 속도였으니 부대낄 일도 힘들 일도 없었다. 당연히 계속하고 싶은 자연식물식이고, 이제는 1000일, 날짜를 잊을 정도의 오랜 시간 동안 더 해보아야겠다. 자연식물식은 건강할뿐더러, 즐겁고 편안하고 맛이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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