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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Jul 13. 2023

나를 위한 선물, 걷기 vs 달리기

피부 건강을 위한 디톡스

내 몸이 바라는 선물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나지막한 산길을 걷기와 재미있는 책 읽기, 그리고 에세이 쓰기, 거기에 맛있는 카페라테와 일기장, 그리고 작은 도화지와 색연필. 이 정도만 있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아, 라테는 빼야겠다. 디톡스 중에 카페인은 섭취하고 싶지 않다.


10년 정도 산책을 즐겼다. 시작은 미국에서였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1년 반 정도 살았는데, 남편이 곁에 있다고는 해도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주로 나의 몫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고 거의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내가 혼자서 외출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불현듯 깨달아졌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를 가거나 한인교회를 오가거나 가까운 공원 같은 곳이야 충분히 다녔지만, 아이들 돌봄을 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파트타임이나마 어학연수를 하게 되었다. 내가 공부할 동안은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았고, 나는 하루에 두어 시간 정도 어학원에 다녔다. 어학원이 버스로 가기에는 버스 정류장도 가깝지 않고, 버스 배차간격도 꽤 길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관광버스처럼 크고 창문도 열리지 않는 버스를 타는 것은 갑갑했다. 걸어 다니기에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4킬로는 좀 넘었고, 5킬로 정도 되는 거리였다. 빨리 걸으면 40분이면 갈 수 있었다. 대략 버스를 타나, 걸어가나 시간적으로는 비슷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사진 : Unsplash의 Josh Hild


내가 있던 지역은 미국의 동북부였는데, 겨울이 길고 추웠다. 거의 일 년에 절반은 겨울처럼 느껴졌다. 추운 날 어학원이 있던 대학까지 걷던 기억이 난다. 가는 길에 마주친 쌓여 있는 눈을 보는 것이 좋았다. 어학원을 가는 길에 있는 건축물과 도시의 상점들이 마음에 들었다. 상점에서 내어 놓은 광고판 위에 눈이 반쯤 걸쳐서 쌓여 있던 모습과, 가는 길에 있던 반듯하게 잘 지어진 주택들, 그리고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될 법한 날에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하던 사람들, 나만큼 빠르게 걷던 인도인들… 그렇게 오가는 것이 산책의 시작이었다. 여름의 산책은 열감과 시원함이 함께 했다. 뜨거운 날에도 저녁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닐 만큼 깨끗한 공기였기에, 텁텁한 느낌보다는 작열하는 태양이 뜨거울 뿐이었다. 더운 날에 40분을 빠르게 걷고 나면 시원한 물에 세수를 하고 나서 느끼는 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양가에서 오가며 육아를 종종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철철이 계절에 맞는 김치를 해서 가져다주셨지만, 미국에서는 육아도 오로지 내 몫(어학원을 다니는 동안은 남편이), 김치도 내가 담가야 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지낸 시간은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라 편안하고 풍성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남편이 내가 어학원에 다니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어학원에 다닐 상황이 되었고,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학원을 오가며 보았던 풍경은 여전히 좋은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고, 그때 몸에 익은 산책은 지금까지 습관으로 남아 있다.


10년 동안 산책을 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몇 달 전쯤에 달리기로 바꿨다. 가끔 건너뛰기도 했지만 거의 매일 15분씩은 두세 달 동안 달렸다. 달리기의 시작은 효율성 때문이었다. 10년 동안 산책을 해 온 사람이라 어지간히 걸어서는 지치지도 않고 두세 시간은 너끈히 걷는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날은 늘어지게 느리게 걷느라 한 시간을 넘게 걸어도 전혀 운동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마침 지인들이 달리기를 시작하던 터라 나도 한 번 달려보았다. 달리기는 대단했다. 걷기는 한 시간 반을 걸어도 운동이 제대로 안 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달리기는 고작 15분만으로도 충분히 운동이 되고도 넘쳤다. 사실 처음에는 5분만 달려도 얼마나 힘이 들던지 숨을 헉헉 몰아쉬며 달렸다. 그러니 두어 시간 투자할 것을 15분만 투자해도 된다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게다가 달리기가 두뇌 및 신체 말단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니, 안 달릴 이유가 없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실내 달리기라도 했다.


사진 : Unsplash의 Tyler Nix


그런데 지금 내 몸이 원하는 것은 달리기가 아니라, 몸에 익은 산책인가 보다. 달리기가 아토피가 도진 원인일 리는 없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느라 산 속 산책로에 머문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에 15분으로 줄었다. 그나마 달리는 동안은 호흡에 집중하느라 주변 경관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운동은 제대로 됐지만 마음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랫동안 나무가 무성한 산책길을 내 마음의 속도에 따라가며 걷는 일을 하지 못했다. 마음의 속도에 걸음의 속도를 맞추어 느리게 걷다가 속도를 올리기도 하며, 머릿속에서 오가는 생각을 정돈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산의 나무들이 공짜로 선물해 주는 청량한 공기를 실컷 누리는 시간이 훅 줄었던 것이 문제였나 보다. 산에서 머무는 시간이 한두 시간 줄었다고 해서 뭔가 엄청나게 생산적인 일을 무척이나 해낸 것도 아니다. 나를 억지로 짜낸다고 일의 능률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효율성을 따졌나 싶다.


물론 달리기는 누군가에게 좋은 운동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언젠가는 다시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탈스테로이드와 디톡스를 하는 기간에는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오랫동안 걸을 생각이다. 산책도 하다 보면 도가 튼다. 산책에 도가 트면, 무심코 걷다가도 복잡한 생각은 정돈되고, 풀어낼 생각이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내려간다. 어떤 날은 생각지도 못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떠오르거나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시 산책을 시작했는데, 아직 산책에 도가 튼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못했다. 걸으면서도 마음이 바쁘니, 찬찬히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래도 당분간은 걸으면서 다시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 볼 작정이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지만, 때로 생각 이상의 것을 얻기도 한다. 아토피 치료를 위해 몇 년 동안 한의원에 다녔는데, 한약이 내 아토피를 치료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낫지 않던 손발 냉증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한약을 먹은 지 10년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내 손발은 따뜻하다. 콧바람을 쐬러 나간 어학원에서 영어를 제대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학원을 오가는 길에 산책을 습관으로 들였다. 그리고 산책은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내 마음이 위로받는 행위이다.


표지 사진 : UnsplashJosh 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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