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옥수수가 가장 맛있을 때다. 배송받은 옥수수를 꺼내어 보니, 싱싱해서 싱그러운 향기라도 날 것 같다. 바로 겉껍질을 벗겨내고 삶았다. 물을 자박하게 붓고 굵은소금을 한 큰술 넣었다. 속껍질과 옥수수수염을 냄비 아래에 깔고 위에 옥수수를 눕혔다. 센 불에 40분 정도 삶고 약한 불에 20분 정도 더 두었다. 한 김 식혀서 한 알을 떼어먹으니 입안에서 구수하게 톡 터지는 맛이 올해 최고의 옥수수다. 초당 옥수수는 달아서 좋고, 빨리 삶아지니 편하지만, 아삭아삭한 식감에 영 적응이 안 된다. 지난번에 시킨 옥수수는 겉껍질이 말라 있고, 씹을 때 알이 단단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옥수수는 그야말로 어릴 때 강원도에서 먹었던 옥수수 맛 그대로다.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떼어서 입에 넣을 때마다 강원도 이모 댁에서 놀던 기억, 어머니가 옥수수를 간식으로 내어 주시던 기억, 놀이동산에서 옥수수를 먹던 기억 등 추억마저 소환된다. 옥수수와 연상되는 기억도 즐겁지만, 이번 옥수수는 그 맛만으로도 충분하다. 5대를 쪄서 혼자 4대를 다 먹었다. 나머지 1대는 아이들 토르티야 피자에 토핑으로 올려 주었다.
자연식물식(채소, 과일, 통곡물 위주의 식사)을 하니, 식재료 자체의 맛에서 즐거움이 느껴진다. 신기한 일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알게 되니, 다른 음식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자연식물식에 익숙해질수록 옥수수와 잡곡밥, 채소 반찬과 과일만 있어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고, 반찬을 더 꺼내거나 더 만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오늘 아침은 다양한 과일을 꺼냈다. 자몽, 골드키위, 아오리를 잘랐다. 간식으로는 복숭아와 골드키위를 먹고, 점심에는 감기 걸린 아이들이 먹을 죽을 끓였다. 백미밥을 푹 끓이다가 브로콜리를 다져 넣어 브로콜리죽을 끓이고, 곁들여 줄 반찬으로 달걀 장조림을 했다. 삶은 달걀에 다시마와 간장, 멸치액젓, 소금으로 간을 해서 끓이다가 마지막에 양파와 고추를 넣었다(달걀은 미리 실온에 꺼내 두었다가 삶으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 혼자 먹을 자연식물식 식탁은 새로운 반찬 없이 있는 찬으로 차렸다. 별 반찬이 없어도, 며칠 전에 만들어 둔 얼갈이 겉절이가 시원해서 좋다. 입맛이 이렇게 바뀐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김치나 겉절이는 반찬으로도 치지도 않았고, 공장 음식이나, 육류가 한 가지는 있어야 제대로 된 밥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볍고 산뜻한 반찬이 있어야 입맛에 맞다.
아이들 간식으로는 토르티야 피자를 만들어 주었다. 토르티야 위에 케첩을 바르고 양파, 파프리카, 옥수수를 올린 다음 모차렐라가 녹도록 구웠다. 나는 옥수수를 간식으로 몇 번이나 먹고, 저녁에는 잡곡밥을 했다. 찰현미에 쥐눈이콩, 녹두를 섞어 밥을 하고 백미는 조금도 넣지 않았다. 완전한 잡곡밥도 먹어보니, 먹을만하다. 자연식물식 음식이 익숙해지면서 찹쌀이기는 하지만 현미밥도 불편하지 않다. 다음에는 멥쌀 현미로 밥을 지어보아야겠다.
자연식물식 27일째인 오늘은 바뀐 입맛을 실감한다. 작년부터 체질식을 했는데, 체질식이 자연식물식 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더 많았음에도 먹을 게 없더니, 이제는 자연식물식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다. 오히려 공장음식을 입에 달고 살 때에는 아무리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만족이 없었는데, 담백한 음식을 먹으니 입맛이 예민해져서 식재료마다 향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건강한 음식을 더 즐기면서 먹게 되었다. 오늘의 아침 몸무게는 약간 줄었고, 몸의 전반적인 컨디션도 좋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아토피도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 표지 사진: Unsplash의 Mgg Vitchak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