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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Apr 17. 2023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

싱글맘의 시작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

2017.10.31


한참을 울었고, 그러던 중 전화 두 통을 받았다. 한 통은 나와 같이 싱글맘의 삶을 사는 여인. 우리는 전에 단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사이였지만, 나는 내게 그런 전화를 해주는 그녀가 참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그 통화의 끝에 


“아이고. 그래도 자기는 돈이라도 있지. 나는 정말 지금 땡전 한 푼 없어서.. 그렇다고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내가 더 불쌍한 년이니깐... 나는 뭐, 앞으로 나 같은 여자도 있으니, 나를 보고 다른 여자들이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 것으로 보람을 삼고 살아야겠어요.”


라고 했다.



그러고 난 후 흐느적흐느적 겨우 몸을 일으켜서 죽은 남편 때문에 아직도 남은 몇 가지 일들을 처리 했다. 아마도 한참은 이런 일들을 하면서 지내겠지. 얼마 전에 친정아빠가

“아빠는 지금 머리가 두 동강 나는 것 같다.”

라고 하시던데, 나는 오늘 일들을 처리하면서 딱 그 말이 생각이 났다. 나도 정말 머리가 두 동강 나는 것 같았다. 오늘도 남편이 죽고 난 후 일 처리를 위해 법원에 소송 해 놓은 것 중에 한 개 사건에 대해서 보정명령이 와서 그거 처리 하고, 죽은 남편 핸드폰 해지 하고, 또 남편이 살았을 때 해 놓은 대체로 멍청한 일들을 판단하는데 시간을 썼다.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은 멍청한 남자가 있을까, 이 남자는 대체 의대 갈 공부는 어떻게 했던 걸까를 잠시 생각하다, 그리고 조금 남은 시간을 멍하게 보내고 있는 즈음 아침에 걸려온 전화 중 다른 한 통의 주인공을 만났다.



너는 너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원래는 직업이 변호사인 그 친구를 만나서 뭔가 내 상태에 대한 법률적인 조언을 얻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 내 상태는 현저히 안 좋았다. 나는 그런 전문적인 이야기 대신 그냥 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결혼하고 나서, 그 사람이랑 식구들 덕분에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을 잃었는데, 당장 무슨 일이든 일자리부터 구해야 할까, 나는 무슨 일을 할까. 뭐 이런 얘기들을 하던 와중 그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넌 너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라고.




그렇게 그와 몇 마디를 더 나눴을 즈음, 나는 지금 내가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이건 그냥 내게 벌어진 하나의 일일 뿐. 이 일이 좋거나 좋지 않거나는 어쩌면 지금 이야기 할 성질의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확실한 것은 내가 이제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뿐.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나는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장례는 끝났다. 내가 그 인간에 대해서 뭔가를 더 생각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내 미래를 그려야 했다. 이 상황을 안고서도 앞으로 나갈 내 미래를 그려야 했다. 그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으로 바탕으로 하나씩 해 나가자. 나는 아이들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리 크게 자라서 나를 잡고 서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그런 큰 기둥. 나는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런 나의 상황을 내 몸으로 안아야 한다. 내게 벌어진 이 말 같지도 않은 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나는 이 일을 인정하고 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품고서도 내가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어왔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수 있을까. 아, 그래. 어쩌면 이것은 내게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굳건히 버틸 수만 있다면. 나와 같은 여자들을 위한 삶을 사는 일



나는 아침에 통화했던, 앞으로의 나처럼, 지금까지 아이 둘을 혼자 키워왔다는 그녀와의 대화를 기억해 냈다.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전에 한번 만났던 그녀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던 그 통화. 나는 그것을 기억해내고, 내가 지금부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냈다. 나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여자들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나는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들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그들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나를 위한 삶이 될 테니까. 아,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것만 같다. 나는 이제 나와 같은 여자들을 위한 삶을 살리라.



너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의 장례식에 왔다가 남편을 화장해서 바다에 보내는 일까지, 그리고 그 후에 그날 있었던 남편의 재판이 있던 법원까지 같이 같던 한 친구는, 내가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라고 했더니, “나도 (너한테)내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 했다. 어릴 적 고향친구인 그녀는 

“그리고 너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앞으로 무슨 일을 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라고 했었다. 나는 오늘 다시 내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남편의 장례식에서 그녀가 내게 해줬던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나는 당신이랑 살면서 한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오히려 나는 나의 많은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면서 당신과 함께할 미래를 그리면서 그 속에서 나의 멋진 커리어와 성공 또한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여전히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당신과 함께 살던 와중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심지어 나는 그때에도, 나는 당신과 살기 위해 나의 성공과 커리어와 많은 꿈들을 접고, 아이를 택했고,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을 택했었다. 



나는 당신께 잘못하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나를 없애고 당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으니, 당신이 그렇게 온 집안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과로로 쓰러져서 내가 과부가 된 작금의 상태 또한 나의 과실이 아니다. 나는 다시 내 미래를 그려야겠다. 나는 당신처럼 의사인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당신과 같이 사느라 내가 해왔던 많은 일과 공부를 버렸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은 내 꿈만은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으니깐. 나는 이제 더 큰 꿈을 그려야겠다. 더 크게 될 나의 미래를.






6년여가 지나고 저 글을 보고 있으니, 

참 나는 저렇게 사별의 아픔속에서도 저렇게 씩씩했구나 . 싶다. 


물론 다른 글을 찾아보면, 또 씩씩하게 지내는게 너무 싫다고 하는 글들도 있지만. 


막 으샤으샤 했다가, 또 슬펐다가,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다만, 저 글을 수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읽으면서, 

꼭 지금 쓴 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 글에 쓰인 저 느낌 그대로 이후 6년여를 보낸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의 기둥이 되어주고자, 일을 한다. 

그리고 뭔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도움이라는 것이 사실, 내가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온전히 서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많은 부분 달성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저 당시에 내게 저렇게 

"너는 잘 할 수 있다." 

"너는 너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고 말해줬던 사람들이 참 고맙다. 


나는 정말로 그들의 믿음처럼, 그리고 나의 믿음처럼. 

잘 해내고 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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