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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Oct 08. 2024

"설려다: 인생의 새 장을 열 때마다 느끼는 감정"

얼마 전 '설려다'라는 말을 들었다. 잘못 들었나 싶으면서도 뜻이 짐작갔다.

'설려다. 설려다.' 종일 머리에 떠다녔다.

언제 이런 감정을 느껴봤을까 태엽을 되감았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는데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기억이 올라오다 풀렸다. 최근에는 언제였을까 떠올려보니 지금이다.

여태 '설려다'라는 감정을 몇 번이나 느껴봤을까. 앞으로는 얼마나 더 올까.


초등학교 시절: 적응의 첫걸음

초등 저학년 때까지,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부.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는 언니, 나, 남동생을 저녁까지 학원을 보냈다. 산수, 주판, 서예, 한문, 피아노 학원 등 작은 동네에 있는 학원은 모조리 투어하고 귀가해야만 했다.

집에 오면 학습지도 해야 하고, 엄마가 '서점 아가씨'라고 부르는 언니가 사 오는 책도 읽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해도 머리에 남는 게 없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으니 친구들과도 접점이 없었다. 여기저기 속하지 않은 흐릿한 존재로 살았다.

그러다 5학년이 되었다. 다정한 담임선생님을 만난 그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게 되니까 학교생활도 제법 재미있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2교시 수업이 끝나면 4학년 이상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에서 체조를 했다. 담임 선생님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음악에 맞는 안무를 맡았고 우리 반 학생들 사이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대표를 뽑았다. 그런데 뽑힌 여학생이 건강상 이유로 못하게 됐다. 대신할 친구를 뽑기 위해 나를 포함한 여학생들이 칠판 앞으로 나와 율동을 했다. 그런데 반 아이들 투표로 내가 당첨. 내심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되고 나니까 긴장됐다. 당장 내일부터 교단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이나 잠을 설쳤다. 그렇지만 그것도 금세 적응해 나갔다.

이때 처음으로 '설려다'를 경험했던 것 같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배웠고, 설려다가 익숙하다는 감정으로 바뀌는 걸 경험했다.


대학 시절: 해외 인턴십의 도전

대학생이 되었다. 전공은 관광경영학. 4학년 2학기 때 학교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싱가포르 공항 인턴 지상직을 모집한다고. 싱가포르 공항 위탁 회사에서 온 대표와 인터뷰를 마친 뒤 합격 소식을 받았다. 기억에 따르면 2주 뒤인, 2016년 1월 3일에 출국했다.

사실, 합격은 했지만 영어를 못했다. 예상 질문을 줄줄 외워 붙은 거였다. 외항사 승무원을 준비하는 학원에 1년 넘게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질문에는 자판기처럼 답할 수 있었다. 영어실력이 들통날까 봐 출국 날짜가 임박할수록 걱정됐다. 외국에서 일하는 건 좋지만, 부족한 영어실력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죄책감도 들고. 설렘과 두려움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최대한 들통나지 말자고 했는데 실패했다. 두 달 동안 입사교육을 받는데, 첫날부터 강사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매일 영어 공부를 했다. 잘 알아듣고, 제대로 말하자고. 그때부터 내 영어실력이 많이 늘긴 했다.

‘설려다'에 직면했을 때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법을 배운 계기가 됐다.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극복하려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도.


인생의 전환점에서: 연속되는 '설려다'의 순간

그 후로도 '설려다'라는 감정은 계속 찾아왔다. KTX 승무원으로 입사하고, 결혼하고, 대학원 입학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취업을 했을 때도.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그랬다. 빈 도화지를 채울 거라는 기대에서 오는 설렘, 그 이면에서 오는 두려움의 공존.

처음 공저에 참여하고, 개인 저서를 출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책을 썼으면 좋겠다가도, 많이 팔리지 않으면 어쩌냐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 경험을 떠올려보니 '설려다'는 변화와 성장의 신호였던 거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나를 마중나왔으니까.


현재: 창업 도전

또다시 강렬한 '설려다'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티앤북클래스>라는 내 공간을 열면서.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창업을 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반면에 발길이 드물면 어떻게 하나, 월세는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아지트처럼 쓰고 끝나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이번에는 이전의 경험들을 토대로, 이 감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설렘은 동기부여의 원천으로, 두려움은 신중함과 준비성의 기회로 삼자고. 매일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고객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강렬하게 브랜딩 할 수 있을까 애쓰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아직 '설려다'는 현재 진행형이다. 쉬이 물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라는 신호임을 알기에 담대하게 맞설 수 있을 것 같다.


마치며: 당신의 '설려다' 순간은?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나도 언제 '설려다'를 느꼈을까 떠올리는 분이 있을 거다. 있다면 언제였고, 그때 나는 어떠했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 생각해 보면 어떨까. 또다시 이 감정을 맞이하고 싶다면 어떤 소재나 일로 만나고 싶은 지도.

그러한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소소한 설려다가 찾아온다.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해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마침표가 아닌 말줄임표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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