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서 내리는 비
어제 낮,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너 방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난다.”
외부 강의 중이라 바로 가볼 수 없어 퇴근 중인 남편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공방을 둘러본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처형 완전 쏘머즈네. 아주 작은 소리가 어쩌다 한 번 나는데 그걸 어떻게 들었대? 그냥 집으로 퇴근해."
저녁 먹는 와중에도 뭔가 찝찝했다. 7시 30분, 수업 준비도 할 겸 언니의 수학 교습소 안에 위치한 내 공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중앙 테이블 위에 흥건한 물이었다. 급한 대로 손에 잡히는 수건을 집어 나무 테이블을 닦았다. 바닥까지 닦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걸레가 아니라 수건이었지만, 이미 젖어버린 거 끝까지 구석구석 훔쳐내고 버리기로 했다.
물은 천장형 냉온풍기 아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금세 속도가 가팔라졌다. 아이스버킷 챌린지 할 때 쓰는 것 같은 커다란 양동이를 그 밑에 받쳤다. 공방 계약할 때 밀대 세탁용으로 사 두었던 검정 플라스틱 통. 이런 날, 이런 용도로 처음 쓰게 될 줄이야.
냉온풍기에서 물이 새는 줄 알았다. LG 서비스센터 앱을 켜서 다음 날 오후에 출장 예약을 잡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이대로 집에 가도 되나’ 싶었다. 양동이 안으로 물이 떨어질 때마다 소리가 달라졌다. 얇게 치다가, 무겁게 내리꽂다가.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안 가도 못 자고, 가도 못 잘 것 같아서.
오늘 새벽 5시 2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매주 금요일 듣는 세계사 수업이 있는 요일이다. 꿈속에서 만난 공방은 평온했다. 더 이상 물이 새지 않았다. 하지만 '꿈은 반대'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눈곱도 떼지 못한 채 공방으로 나왔다.
문을 여는데, 바닥이 축축했다. 테이블 위쪽 외에, 모서리 세 곳에서도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양동이 안에는 물이 3분의 1쯤 차 있었다. 문 쪽에서도 뚝. 책장 쪽에서도 뚝. 찻잔 진열장 쪽에서도 뚝. 불협화음은 조용한 공기를 소리로 조각내고 있었다.
읽으려고 갖다 두고 쌓아만 둔 신문 뭉치를 꺼냈다. 바닥 여기저기에 펼쳤다. 두 겹, 세 겹. 물방울은 한 위치만 때렸다. 양궁 표적처럼 신문의 중앙을 계속 뚫었다. 신문을 갈아 끼우려고 쭈그리고 있으면 정수리 위로도 떨어졌다. 놀랄 틈도 없이, 손으로 머리를 훔치고 접은 신문을 쌓았다.
책을 옮기고 전선도 뽑았다. 혹시 몰라 온풍기도 꺼서 언니 교습소 방으로 옮겼다. 그 와중에 노트북을 켜고 세계사 수업을 들었다. 수시로 귀는 계속 물소리를 따라갔다. 뚝, 뚝, 뚝. 소리가 자꾸만 새치기했다.
수업이 끝나고 공방으로 들어가 보니 물은 더 많아져 있었다. 1층으로 새면 안 되니까 신문 위를 꾹꾹 밟았다. 튄 물방울도 닦았다. 닦을수록 깨끗해지는 게 아닌, 데자뷔의 연속이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기엔 이른 시간 같았다. 혹시나 일어나 있을까 싶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불은 꺼져 있었다. 다시 들어왔다. 시간을 보내려고 수강생이 보낸 원고를 열었다가, 집중이 끊겨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다. 핸드폰으로 찍어둔 계약서 사진을 찾았다. 7시 20분. 여전히 이른 시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주인분께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2층 교습소인데요, 어젯밤부터 천장에 물이 새고 있어요.”
급히 내려온 주인분은 왜 이제야 말했느냐며 걱정 섞인 타박을 했다. 괜히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호들갑처럼 들릴까 봐 바로 말하지 못했는데. 미련하게 미루는 사이, 네 군데로 늘어났으니 내가 잘못한 건가.
우리는 서둘러 누수 탐지 업체를 수색했다. 다들 저녁에나 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내 수업도 문제지만, 곧 시작될 교습소 아이들의 수업이 걱정이었다. 수소문 끝에 겨우 한 분과 연락이 닿았다.
물방울과 사투를 벌인 지 정확히 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 갑자기 차단기가 내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 전열 기구도 쓰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싶었는데, 전조증상이었던 모양이다. 며칠 동안 천장 배관에서 새어 나온 물이 고이고 고이다, 이제야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온 거다.
이것도 액땜일까. 사전에는 액땜을 ‘앞으로 닥쳐올 액을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기는 일’이라고 적혀있다. 사주에 물이 많아서 그렇다고 치기엔 억지스럽고, 올 한 해 나에게 올 커다란 악재 하나와 맞교환한 거면 좋겠다.
조금 전 도착한 누수 업체 사장님이 천장을 살피기 시작하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젖은 신문지를 걷어내고 새 신문을 깔았다. 물에 젖어 불어버린 석고보드와 조명 안에 가득 고인 물을 보면 한숨이 나지만, 원인을 찾고 있으니 기다려봐야지.
진정 액땜이라면 오늘의 소동은 이 정도로 끝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