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민원 들어왔습니다."
이사 온 지 보름, 벌써 세 번째다. 거실에서 둘째가 작은 공을 두 발로 주고받은 건 1분도 안 됐다. 나는 바로 그만하라고 했고, 공은 러그 위에 멈췄다.
13년 동안 아들 둘을 키우며 1층과 필로티 2층에서만 살았던 내게 층간 소음은 늘 ‘윗집에서 내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참은 쪽이었다. 조심시키는 쪽이 되는 건 처음이었다.
이사 오던 날. 저녁 6시. 이제 겨우 가구들 올려놓고, 정리를 시작한 상황이지만 아저씨들을 돌려보냈다. 계속 작업하면 늦은 밤까지 소음이 날 것 같았다. 이사란 원래 쿵쿵거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건 내 입장일 뿐. 2박 3일 동안 잠도 못 자고 혼자 정리를 마쳤다. 낮 시간에는 옮기는 거 위주로, 저녁 시간에는 정리 위주로 하면서.
첫째가 태어나던 해, 우리는 24층에 살았다. 윗집 초등생 형제가 뛰는 소리에 아이는 자주 잠을 깨고,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몰랐다. 신생아가 못 자면 집 전체가 비상이다. 첫째가 돌이 지나도 둘째를 임신했다. 또 아들 이랬다. 1층 집을 구하려다 필로티로 갔다. 낮은 층에서 9년을 살았다. 이사한 1층 집에서는 4년. 총 13년을 아이들은 원 없이 뛰며 자랐다. 그리고 우리 애들이 다른 집에 놀러 가는 대신, 동네 꼬마 아이들이 자주 왔다. 아이들에겐 놀이터 이상으로 좋은 곳이었지만 나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벌레, 모기, 하수구 냄새, 어두운 조명까지. 그래도 그 값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라며 어느 순간 집에 머무는 시간도 줄어드니 뛰는 시간도 줄었다. 작년엔 소파, 침대와 붙어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제는 높은 곳에서 살아도 되겠다"라는 마음이 몽글몽글 치고 올라왔다. 아이들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고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우린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옮겼다.
설날이었다. 시댁에 다녀와 집에 들어온 시간이 오후 2시 30분쯤. 아이들이 주짓수를 하겠다며 소파에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들에게 각자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애들이 방문을 닫기도 전에 인터폰이 울렸다. 시끄럽다고.
며칠 전 공 때문에 한 번, 지금 또 한 번. 나는 그 속도가 이해가 안 됐다. 밤도 아니고, 대낮이었고, 명절이었다. ‘이 정도도 안 되나’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남편이 막았다. 그렇게 하면 싸움이 된다고. 신발 신은 채로 아랫집 대신 친정으로 갔다. 가는 내내 씩씩 거리는 내 눈치가 보이는지, 아이들은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정에 있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까 받은 스트레스는 잊어버렸다. 먹고, 놀면서 사그라들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가장 먼저 거실화를 신었다. 이삿짐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두툼한 거실화. 문도 천천히 닫고, 발걸음도 죽였다. 세수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물을 틀었다. 시원하게 나왔다. 그때야 보였다. 이 집이 가진 것들.
남향이라 낮에는 불을 안 켜도 된다. 보일러는 19.5도에 맞춰도 버틴다. 예전 집은 23도로 설정해도 추웠고, 가스비가 한 달 40만 원까지도 나왔다. 물도 잘 나온다. 세탁기를 돌리며 샤워해도 문제없다. 여름엔 모기도 덜하겠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환한 거실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이제 발끝에 힘을 빼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제약은 맞바꾼 편안함이 많기에, 우리는 하나의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