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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Dec 08. 2021

엄마 이야기_왜 이 고생을 할까

 엄마는 서울대 병원을 고집했다. 엄마가 사는 지역에서 서울대 병원까지는 5시간이 걸렸다. 왕복 10시간이다. 엄마가 진료를 받던 의사는 목요일에만 외래 진료를 했다. 엄마는 목요일에 투석을 했다. 골치 아파졌다. 


 아침 6시, 서울로 가는 첫 버스를 타고 엄마는 서울로 향했다. 10시 넘어 터미널에 도착하면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대 병원으로 이동했다. 11시쯤 서울대 병원에 접수를 끝내고 몇가지 검사를 하고 진료대기를 하다가 의사를 잠깐 만나고 인공투석실로 향했다. 투석을 4시간 정도 하고 택시를 타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서 막차를 타고(가끔은 심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가 넘은 시각. 그 다음날 금요일은 두문불출하고 잠만 잤다. 

 나는 지금 서른 일곱, 신장과 간에 물혹은 많지만 아직 투석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버스를 하루에 4시간 정도 타면 그 다음날 몸살로 끙끙 앓는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9시간이나 버스를 탄 걸까. 엄마는 그 고생이 자신의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믿은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그 고생이 엄마의 수명을 깎아먹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동안 그렇게 서울을 왕래하다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는 버스 여행이 영 힘들었는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운전해서 왔다갔다 하는 건 무리였고 누군가 운전을 해야 했다. 나는 운전을 못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이 부탁을 들어줘서 한번 그렇게 이동해 봤다. 엄마는 혼자 가던 서울을 남편과 함께 가서 그런지 신이 났더랬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피곤하면 뒷좌석에 누워 잤다. 남편은 하루동안 9시간이 넘게 운전을 했고 병원에서는 엄마 수발을 들었다. 그 다음날 고통스러워하며 출근을 했다. 엄마에게 다음에는 못 가겠다고 했다. 운전해줄 사람을 구해보자고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모르는 사람이 자기 차를 운전하는 걸 꺼려했다. 왜 차로만 이동하려고 하느냐, 기차도 있지 않느냐하고 물으신다면 기차는 없다. 이 지역은 기차역이 없다. 그렇다면 비행기는 어떠냐, 가까운 도시에 공항이 없느냐 물으신다면 엄마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갔다하기 무서우셨을 것 같다.


 엄마는 살면서 비행기를 딱 한번 타봤다. 다들 신혼여행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다. 엄마, 아빠는 신혼여행을 아마 안 갔을 것이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나를 낳고, 둘째 동생을 낳고, 막냇동생을 낳고, 막냇동생이 좀 큰 후에 부부 동반 여행이었는지, 막냇동생 유치원 여행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그 일로 제주도로 가는 길에 비행기를 딱 한번 타봤다. 아, 두 번 타봤구나. 가는 길, 오는 길. 그런 엄마에게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혼자서 왔다갔다 하라는 건 가혹했을 것이다. 내가 같이 간다면 가능도 한 일이었을 텐데-나라고 비행기를 타본 건 아니었다- 직장 생활 중이었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목요일에 서울을 왔다갔다 하면 금요일에 지친 몸을 끌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두시간 거리의 도시에 사는 둘째 동생에게 부탁했다. 둘째 동생도 운전을 할 줄 모른다.-우리 형제들은 왜 이 모양인가 싶다- 둘째 동생의 남편이-내게는 ‘제부’인- 하겠다고 했고 그 이후로는 제부가 몇 번 서울행을 도왔다. 동생네는 운전시간이 더 길어졌다. 동생네 도시에서 엄마가 사는 도시로 2시간 걸려서 와서 엄마를 데리고 5시간 걸려서 서울로 올라갔다가 5시간 걸려서 엄마를 집에 데려다 주고 2시간 걸려서 동생네는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동안 14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내가 그러지 말고 운전해줄 분을 찾자 했지만 천사 같은 둘째 동생과 제부는 괜찮다며 그 긴 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엔 제부도 힘들어졌다. 제부는 원래 허리 디스크로 요통을 앓았는데 서울을 몇 번 행차하고 난 뒤 요통이 너무 심해졌던 것이다. 결국 운전해줄 분을 구했다. 

 엄마는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한번 갔다 온 뒤로는 괜찮았다고 했다. 운전해주신 분도 하루 벌이로는 괜찮으셨는지, 엄마가 그리 진상 고객은 아니었는지 다음에도 이렇게 갈 일 있으면 불러달라 하셔서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부탁드렸다. 

 나는 이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왜 이 고생을 할까. 가서 하는 거라곤 얼마나 나빠졌는지 확인하는 것뿐인데. 그건 엄마가 일상으로 투석하는 병원에서도, 신장 전문의 진료를 받고 싶다면 둘째 동생네가 사는 2시간 거리의 도시에서도 할 수 있는 건데. 


 엄마는 다낭신 분야 국내 최고라고 불리는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고는 몸은 어떠세요, 검사상 지난 번이랑 비슷하네요, 나빠졌네요, 식단 관리 잘하시고 피곤하게 지내지 마세요, 이런 말을 듣는 것뿐인데. 


 엄마는 담당 의사를 보는 그 5분이 위안의 시간이었을까? 잘 될 거라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얻는 시간이었을까? 하긴 엄마가 그 고생하지 않고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받았다 한들 엄마의 수명에 큰 영향을 미쳤을까 싶다. 수명에 그리 큰 영향 끼치는 게 아니라면 엄마 하고 싶은대로 한 게 잘한 일이었다. 내가 보기엔 왜 그 고생을 하나 싶지만 엄마는 내가 아니니까. 엄마한테는 유용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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