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까무룩 하니 잠이 들려는데,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다가 책상 앞 의자에 걸렸다. 기다란 팔이 들어와 의자를 책상 쪽으로 밀어 넣었다. 내 딴에는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다. 유진이 또 잔소리를 시작할 게 뻔했다. 유진은 문을 열고 안쪽으로 쑥 들어와 의자를 잡고 문을 닫았다. 내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키니 옷장을 열어 입고 있던 자켓을 옷걸이에 걸었다. 얼굴에 묘한 설렘이 떠 있었다. 비키니 옷장 지퍼를 잠그고 돌아서던 유진은 2층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 잤어?”
친절한 말투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유진은 책상의 두 번째 서랍에서 에이비씨 초콜릿을 하나 꺼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후, 자기 전에 고단한 하루를 달래는 간식이었다. 입에 집어넣으려다가 흠칫하더니, 나를 보고 물었다.
“하나 먹을래?”
정말 무슨 일일까?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다시 서랍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침대 난간 사이로 손을 내밀어 초콜릿을 받았다. 유진이 입안에 초콜릿을 넣는 걸 보고, 나도 초콜릿을 입안에 넣고 요리조리 굴렸다. 초콜릿 표면이 녹으면서 달달하고 끈적한 액체가 혀의 유두 사이로 고였다. 유진은 기도라도 할 듯한 엄숙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케이스 사이에 꽂힌 종이를 꺼냈다. 여태껏 같이 살면서 그렇게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엄청 좋은 꿈을 꿨거든. 꿈에서 우리 방에 창문이 큰 게 있었는데, 그 창문을 여니까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물이 집으로 들어오는 건 재물이 들어올 꿈이래. 그래서, 흐흐흐.”
종이는 복권이었다. 초콜릿이 반쯤 녹아서 입안이 달달한 맛으로 가득했다. 나는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복권 당첨을 바라는 유진이 어이없었다. 유진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말을 이었다.
“우선 당첨되면 편의점 알바부터 그만둘 거야. 그리고 작은 평수라도 아파트를 하나 사야겠지? 아니다, 당첨되면 당장 나가서 너랑 나랑 술부터 좀 먹자. 술 먹은 게 언제야?”
유진은 스마트폰을 꺼내 당첨 번호를 검색했다. 표정은 이미 당첨을 확실시하고 있었지만, 복권을 쥔 손은 많이 초조한지 허벅지를 타닥타닥 치고 있었다.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고 허벅지를 치던 손을 들어 복권을 폈다. 종이와 폰을 번갈아 쳐다보던 유진은 양손을 늘어뜨리고 침대 1층에 앉았다. 나는 몸을 난간 밖으로 내밀어 유진의 정수리를 지켜봤다. 교근이 도드라질 정도로 유진은 턱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교근의 힘을 풀고는 책상 위에 있는 빨간펜을 들고 폰과 종이를 비교하면서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한 배열에서 당첨번호가 3개만 있어도 5000원, 본전 구실은 한다. 30개 숫자 중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쳐진 숫자는 4개뿐이었다. 한 줄 가지런히 있다면 한 달 식비로라도 썼을 텐데, 숫자들은 뒤죽박죽이다.
초콜릿은 이미 다 녹아서 목구멍을 넘어갔다. 입안에는 초콜릿이 남긴 텁텁함만 가득했다. 다시 양치해야 할까?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암담해 하는 유진 옆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기가 미안했다. 유진은 복권을 구겨 쥐면서 말했다.
“잘됐어. 나중에 내 위인전이 쓰일 수도 있잖아. ‘이유진은 20대 초반 복권에 당첨되어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고 적히면 얼마나 웃기겠어.”
유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꿈을 꾸다가 현실로 돌아온 유진과 꿈꾸기를 비웃은 내가 창문 없는 방에서 함께 잘 생각을 하니 갑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