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나고야- 자연사 박물관- 빈 시청사
11살 일기
초밥집에 갔다. 초밥도 맛있었지만 김치찌개가 정말 끝내줬다. 갑자기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9살 일기
박물관은 이제 지겹다. 장난감 박물관만 빼고.
점심을 먹기 위해 미리 점찍어 두었던 '스시 나고야'로 향했다. 일본어로 된 상호였지만, 초밥 말고도 한식 메뉴도 팔고 있는 곳이었다. 식당 주인 역시 한국사람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한식을 먹은 이후 줄곧 한식 타령을 하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고심 끝에 고른 장소였다. 다행스럽게도 구글 지도를 보니 한식에 대한 평점이 높아 사뭇 기대가 되었다.
오페라하우스와 칼스 플라츠 광장을 지나서 내려가는데 젊은 남녀들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그들을 따라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독일어를 모르는 터라 정확하게 알긴 어려웠지만 대략 취업 박람회가 열리는 중인 것 같았다. 유럽의 실업률이 높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그 현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보는 취업의 열기는 우리나라 못지않게 절박하고 뜨거웠다. 진지한 자세로 직업을 찾는 빈 청년들의 눈빛에서 이 도시의 또 다른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에도 냉혹한 현실의 삶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아빠, 이 사람들 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응,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
"......"
일우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고 느낀 것일까? 부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에는 지금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길 마음 모아 기도했다..
'스시나고야'의 음식들은 구글 지도의 평점대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밍밍하지 않은 칼칼한 김치찌개를 오래간만에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초밥 역시 얼마 전에 마트에서 사 먹은 냉장 초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맛이 있었다. 초밥과 김치찌개 그리고 두부김치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우리는 그 유명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모셔져 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10센티미터가 약간 넘는 이 작은 크기의 조각은 1909년 도나우 강가에서 철도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가슴과 배, 엉덩이가 극도로 과장된 이 여성 조각상에 대해서는 출산에 대한 소망을 형상화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지만 정확한 진실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을 다스리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보물들을 전시한 것에서부터 기원했다는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품목들은 방대하고 다양했다. 아쉽게도 영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밖에 준비되지 않은 까닭에 모든 전시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실력을 좀 더 키우고 오는 건데.' 하는 부질없는 아쉬움만 마음 가득 뒹굴 뿐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여행기간이 길어질수록 언어 특히, 영어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영어는 필수 그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유물에 제법 흥미를 보였던 아이들도 관람 시간이 길어지자 점차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유물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지만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 못 한 전시물들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미흡한 관람 준비와 미천한 영어실력으로 인하여 우리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실물로 본 것에 만족하며 박물관을 나와야 했다.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 위치한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는 풍채 좋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동상이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동상 아래로 네 명의 충신들의 기마상이 사방으로 호위를 하고 있었고 북쪽 면 중앙에는 그녀의 주치의였던 스비텐 동상이 위치해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스비텐의 바로 뒤에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였던 글록과 하이든 그리고 어린 모차르트가 서 있다는 점이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시청사에 도착했다. 마침 흥겨운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커다란 중앙 무대에서는 락밴드들이 흥겨운 공연을 펼치고 있었고 일찍 퇴근을 한 인근의 직장인들이 공연과 맥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울 시청과 마찬가지로 이곳 빈의 시청 역시 시민들의 휴식을 위한 축제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프레첼과 소고기 돈가스가 들어간 버거인 슈니첼 버거를 사주었다. 물론 나를 위해 시원한 비엔나 맥주 한 잔을 사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렇게 음식과 맥주를 즐기며 비엔나 시민들 사이에 섞여 공연을 즐기고 있노라니, 긴장이 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모처럼 맞는 평화로움과 행복감에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두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듣도 보도 못한 오스트리아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오늘만큼은 나와 아이들 모두 빈의 시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