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같은 집회, 걱정 많은 아빠.

세체니 다리- 부다 왕궁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헝가리에 오니 거스름 돈을 많이 줘서 힘들다. 거스름 돈 계산 때문에 간식을 사 먹기가 힘들다.



9살 일기

빨리 어른이 돼서 세체니 다리 위에 올라가야지.



숙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본격적인 부다페스트 관광을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숙소 근처 역에서 교통권을 구입했다. 이번에는 신용카드를 사용해 보았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헝가리에서 환전만 계속하다 보니 처치 곤란한 동전들만 쌓이고 있는 까닭이었다.

어제저녁 들러 굴라쉬 수프를 먹었던 뵈뢰슈머르티 역(Vörösmarty tér)에 도착했다. 광장을 가로지른 후 두나 강을 따라 올라갔다. 강변에 늘어선 식당들에서는 관광객들이 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즐거운 분위기에 아내와 함께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이곳 사람들처럼 춤까지는 아니더라도 바이올린 반주에 와인잔을 부딪히며 발장구 정도는 칠 수 있진 않을까?

두나 강은 오스트리아의 빈을 지나 이곳 헝가리까지 흐르는 도나우 강의 헝가리 식 표기다. 영어로는 다뉴브 강이고 체코어로는 두나이 강으로 불린다. 도나우 강은 독일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을 지나 흑해로 들어간다. 고대 로마제국은 이 도나우 강을 북쪽 국경으로 삼고 그 연안에 요새들을 설치해 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 요새들은 오늘날 빈과 같은 대도시들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서 교류의 통로로 기능한 도나우 강은 헝가리 인들의 조상인 마자르족들이 이곳 헝가리 지역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부다페스트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인 세체니 다리에 멈춰 섰다. 다리 양쪽에 사자상이 있어 '사자 다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밤에 빛나는 모습이 쇠사슬처럼 보인다고 해서 '체인 브릿지'라고 하기도 한다.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로 헝가리 인들에게 존경받는 개혁 정치가 ‘세체니 이슈트반’이 건축한 다리이다. 다리가 없던 시절 기상악화로 인해 배가 뜨지 못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던 세체니 이슈트반은 그때의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이 아름다운 다리를 완성시켰다. 2차 대전 때는 후퇴하는 독일군에 의해 폭파되는 수난을 겪었다가 다시 복구되기도 했다. 문득, 피렌체에서 보았던 베키오 다리가 떠올랐다. 상관의 명령에도 베키오 다리를 폭파하지 않았던 독일군 지휘관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 세체니 다리 역시 무사했을까?

부다 지구 공원에서 바라본 세체니 다리의 모습

세체니 다리를 건너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부다 왕궁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아빠, 슬러시 사줘요.”

삼십 분 정도 걸으면 당이 떨어지고 마는 혁우가 과일 슬러쉬를 사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일우에게 돈을 쥐어주고는 사 오라고 시켰다. 화폐 단위가 ‘포린트’로 바뀌어버린 헝가리에서는 유로화를 쓰는 다른 나라와 달리 동전으로 해결되는 군것질이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지폐를 쥐어줄 때면 언제나 거스름돈을 잘 받아오라며 신신당부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대체로 잘 거슬러 오고는 있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나는 부다 왕궁을 향해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여행경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웬만한 거리는 되도록 발품을 팔기로 했다.

“아빠, 아까 그 케이블카 타면 안 돼요?”

“그 돈으로 너희들 슬러시 사 준거야.”

"그런 게 어딨어요? 사 주기 전에 말해야죠."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슬러시 안 먹을 걸......”

일부러 다리를 쿵쾅거리며 앞서가는 혁우의 뒷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13세기 후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부다 왕궁은 현재는 역사박물관, 미술 박물관, 국립도서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왕궁 입구에는 날개를 활짝 편 채 칼을 자신의 발톱으로 움켜쥐고 있는 ‘트룰’이라는 새의 동상이 있었다.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7부족장 중의 한 명인 '아라드'를 낳았다고 하는 전설의 새이다. 다른 전설에서는 낳기까지 한 것은 아니고 '아라드'를 도나우 강이 흐르는 '카르파티아'라는 지역까지 이끌고 오기만 했다고도 한다.



부다 왕궁에서 부다페스트 시내를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시내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장면에 감탄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왕궁 바로 아래 강변 쪽에서 사람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구호를 외치는 소리와 함성은 분명 집회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세비야에 이어 두 번째 보는 집회 장면이었다. 집회의 성격이 그러했는지 세비야에서 본 스페인 사람들의 집회에 비해서는 좀 더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부다 왕궁에서 내려다본 부다페스트 시내 풍경

궁금한 마음에 부다 왕궁을 내려와 군중이 모여있는 세체니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군데군데 제복을 입은 경찰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방패나 곤봉 같은 무기로 중무장을 한 진압 부대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 조차 대체로 여유로운 표정인 것이 마치 놀러라도 나온 듯한 얼굴들이었다. 시위하는 인파에 휩쓸려 우리 역시 세체니 다리 위로 흘러갔다.


조금 전 우리끼리 넘어왔을 때와 다르게 세체니 다리 위는 차량통행이 전부 금지되어 있었다. 자동차 대신 기나긴 시위 행렬이 세체니 다리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었다. 여성도 포함된 몇몇 젊은이들은 위험하게도 세체니 다리의 철골 구조물 위를 외줄 타듯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집회를 축제처럼 즐기고 있었다.

세체니 다리를 지나가는 군중들과 철골 구조물 위를 걷는 청년들

“아빠, 나도 저 누나처럼 위로 올라갈래요.”

"안돼, 위험해서 안돼. 저건 아빠도 무서운걸?"

"아이, 나도 할 수 있는데."

“못해, 나중에 네가 커서 오면 그때 해!”


모험심이 많은 혁우가 고집을 꺾지 않자 안전을 중요시하는 일우가 나서며 나의 말을 거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헝가리 시민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기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파에 아이들이 휩쓸려 갈 것을 염려하는 걱정 많은 아빠였다.


세체니 다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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