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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07. 2024

마침표가 되지 않도록.


내가 묵는 호텔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다. 길이가 1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영장이지만 수심은 2미터가 넘는 곳도 있다. 특별한 경고 표시도 없어서 첫날 그것도 모르고 첨벙첨벙 들어갔던 나는 그대로 익사할 뻔했다. 어쨌든 그 깊은 수심은 사람들이 수영장을 이용하지 않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수영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한테는 나름 수영의 재미를 주는 측면도 있었다. 

나는 주로 아침 조식을 먹기 전, 수영장을 이용하는데 이게 또 공복 유산소 운동이 되는지 다이어트 효과가 꽤 좋다. 이 호텔에 묵기 시작한 게 오늘로써 딱 일주일인데 그 사이 눈에 띄게 허리가 잘록해졌다. 물론, 과자나 빵 같은 가공 식품을 안 먹은 효과가 더욱 클 것이지만 그래도 안 먹기만 해서는 이렇게 단기간에 체중을 감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긴, 그 일주일 사이 서핑을 배운다고 바다에 꼬꾸라진 게 거의 백 번은 넘을 테니 거기서 소모한 열량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체중이 감소되면서 평소 일터에서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허리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 같은 체험도 했다. 그저 오랜 의자 생활로 허리 쪽 근육 척추 기립근이 약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원흉은 굵어진 허리와 툭 튀어나온 뱃살로 척추 근육과 뼈에 과도한 부하가 걸린 것었다. 그것도 모르고 허리를 강화한답시고 코어 운동만 주야장천 했으니 이러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지식이 허리를 두 동강 낼 뻔했다.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나는 이곳 발리에서 수영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일단 내가 수영을 좋아했던 이유는 수영을 하는 동안 잡생각이 사라지며 내 신체의 동작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나는 직장과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를 물속에 녹여내곤 했다. 물론, 딴생각에 동작이 흐트러지면 그대로 한 바가지 수영장 물을 들이켜야 하는 고통이 두려운 이유가 가장 컸지만.



요즘에는 물에 익숙해졌는지 가끔 딴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 평형을 할 때가 그랬다. 호흡을 하기 위해선 물속으로 머리를 넣어 앞으로 나아감과 동시에 머리를 띄어야 한다. 



사람들이 물에 빠졌을 때, 무조건 숨을 쉬려고 머리를 쳐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며 오히려 가라앉게 된다. 때문에 물에 빠지면 무조건 숨을 한 움큼 들이마시고 물속으로 머리를 넣은 후 손 발을 이용해 다시 머리를 내밀어 다음 호흡을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잠시 호흡을 멈춘 후, 다음 호흡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문득 우리네 삶도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보겠다고 계속 고개를 쳐들고서는 가쁘게 호흡만 하려 한다면 오히려 삶 저 편으로 가라앉아 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삶에도 다음 전진을 위한 잠깐잠깐의 쉼이 필요하다. 오로지 전진만 하다가는 번아웃으로 삶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삶에 쉼표가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 쉼표 역시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된다. 



쉼표가 너무 길어지면,
 그 또한 마침표가 될지도 모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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