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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17. 2024

바다를 빼앗긴 누사두아 사람들

누사두아 산책



침에 일어나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목에는 가래가 잠겨  있었고, 머리로는 두통으로 인한 통증이 조여왔으며, 코에서는 콧물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직 감기에서 다 회복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컨디션 조절을 위해 오전은 집에서 쉬기로 했다.


아침식사를 오믈렛으로 간단히 마친 후 방 침대에 누워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많이 들었던 '이숙영의 러브 fm'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숙영 DJ는 나와 마찬가지로 휴가 중인 까닭에 다른 DJ가 대신 진행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좀 실망스러웠다.



하는 수 없이 팟캐스로 옮겨 '매불쇼'를 듣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코너는 '시네마 지옥'이었는데 마침, 고 이선균 배우의 유작인 영화 '행복의 나라'를 소개하고 있는 중이었다. 평론가들은 언제나처럼 직접 영화에 출연한 이원종 배우를 앞에 두고도 격렬하게 영화에 대한 비판을 나누고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보통 영화에 출연한 게스트를 초대하면 그 영화에 대한 칭찬을 하기 마련인데 이 코너의는 그런 통념을 깨고 있었다. 나는 좋은 점은 칭찬하고 나쁜 점은 비판하며 적절히 선을 넘나드는 이 프로그램만이 갖고 있는 지점을 좋아했다.



특히, 그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평론가들의 극렬한 대립으로 인한 갈등상황은 듣기에 조금 불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 불편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조율하는 최욱 MC의 진행능력을 나는 매우 높이 평가한다.



때로는 비속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채찍과 허를 찌르는 유머로 포장한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는 그의 진행 방식이 다가오는 미래의 새로운 리더십의 한 유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 금쪽같은 시간에 한국에서도 매일 들었던 팟캐스트만 듣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랩으로 이곳 볶음밥인 나시 고랭을 주문해 점심을 해결하고는 길을 나섰다. 멀리는 못 가더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물주먹이라는 재미있는 뜻을 가진 '워터 블로우'와 아름답게 잘 정비되어 있다는 '누사두아 비치'를 가보기 위함이었다.



막, 워터블로우의 개표구에서 표를 끊으려는데 매표원이 내게 뭐라고 말을 했다.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반문을 했지만 그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은 오늘 파도가 약해서 워터블로우를 제대로 관찰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입장하겠느냐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내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염 가득한 서양 어르신이 내게 통역을 해줬다. 부드럽게 아래로 그어진 눈 옆의 주름들과 이미 고인이 된 숀 코네리의 그것과 같은 중후한 목소리가 그의 넉넉한 인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표를 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음에도 짜증 나는 기색 없이 낯 모르는 동양인 여행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그 모습이  여유로운 성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후 매표원에게 소리쳤다.



"그래도 괜찮으니 입장할게요."



생각보다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인 워터 블로우 현상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매표원의 말을 따라 입장하지 않았다면 좋은 광경을 놓칠 뻔했다. 서양 어르신에게 다시 한번 감사했다.


누사두아 비치로 가는 길,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가는 갈림길을 발견하였다. 특별히 출입을 금한다는 표시가 없기에 용기를 내어 호텔 내부로 들어섰다. 넓은 수영장과 유럽의 궁전과도 같은 모양의 객실 건물들이 확실히 그동안 내가 여기서 묵던 숙소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게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제주도에도 하얏트 호텔의 프리미엄급인 그랜드 하얏트가 있긴 했지만 이곳에 비할 수는 없었다. 이미 호텔을 지을 때부터 해변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얻었는지 바다를 포함한 넓은 부지에 인도네시아 전통가옥을 모델로 한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의 여유로운 배치는 흡사 천국의 모습과 닮아있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이곳 주민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 바다와 해변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걸까?



일단, 호텔 측에서 내건 경고문을 보면 그런 듯 보였다. 호텔 측에서 독점적인 해변 사용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투숙객이 아닌 사람은 이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경고문이었다.



뭔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 역시 해안가의 일부 부지를 호텔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 준 예가 있지만 그건 주민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기업에 해안 사용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준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 살아왔던 주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곳을 개발하는 정부에게도 여러 가지 고충이 분명 존재했었을 것이었다. 그중 가장 큰 문제가 비용 문제였을 테고, 그 비용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1등 공신은 아마 이 해변사용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었을게다. 그러했기에 이 긴 해변에 웅장하게 늘어선 그랜드 하얏트, 소피텔, 클럽 매드, 웨스틴 등의 세계 유수의 특급호텔들을 유치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 아름다운 해변에 대한 권리를 개별기업에 전적으로 양도하는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생각건대 이 아름다운 천국의 완성으로 인해 원래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누사두아의 주민들의 해변에 대한 권리는 완전히 박탈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산책과 수영을 하면서 하루의 여유를 즐기는 대신 정부가 허용한 구역에서 해양레저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빈땅맥주나 나시고랭 등을 파는 생업 만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곳 누사두아 비치에서는 꾸따 비치와 짱구 비치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해변에서 노는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발리 어디를 가도 눈에 띄었던 버려진 개들의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막대한 자본으로 만들어진
인공천국 누사두아 해변은
가난한 자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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