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어중간한 날씨였습니다. 날씨에 "웬 어중간한?" 표현을 쓰는 것도 우습지만, 차지도 덥지도 푸르지도 흐리지도 않은 중간계에 속한 날씨는 "찌뿌둥한 몸과 마음" 자체입니다. 그래도 바람은 불어 빨래는 말렸지만 기분이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제 날씨도 백점, 청명한 하늘은 아니었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길을 걷다 보니 선글라스에 비친 하늘색이 강 주변의 녹지와 딱 들어맞았습니다. 하늘색과 땅을 덮고 있는 초록의 풀들이 구분 없이 "초록계(界), 푸르계(界)"로 접어들어 한여름의 용광로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네요, 날씨는 어느새 "여름 도가니"로의 진입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상쾌하지 못한 인간의 육신과는 달리, 고개를 드나 숙이나 온통 연초록의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얘들은 뭐가 그리도 좋아 이처럼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상쾌하고 생동감 있는 색으로 세상을 물들이는지요...
어쩌면 이다지도 찌뿌둥하고 어중간하게 후덥지근한 날씨가 연둣빛 생명들에겐 초록의 세상을 맘껏 펼쳐나가기에 좋은지도 모릅니다. 연둣빛 아이들은 고난과 불만도 씩씩한 거름으로 활용해 푸르름을 더하는 듯합니다.
이제 7월과 8월의 열기를 넘어서면 그저 가을로 접어들 것입니다. 땅을 접하고 살면 달력 넘길 새도 없이 시간은 저 스스로 알아서 나를 끌고 갑니다. 끌려가면서야, 이다지도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인 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땅과 함께 살기로 한 이상, 맡기고 흐름대로 이탈하지 않는 비워가는 순간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방이 채워진 여름을 겪으며 준비하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즈음엔 "풀멍"이 제격입니다. 잡초도 아직 거칠게 자라지 않은지라 연녹색의 여린 몸뚱이는 건드리기만 해도 뽑혀 나오지요. 잡초뽑기도 그만큼 쉽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잡초나 명분 있는 아이들이나 연초록의 옷 색은 다 같습니다. 백합과 아직도 새롭게 피어나는 사계장미를 제외하면 봄 꽃들은 이미 떠난 지 오래고, 목단도 연둣빛 넓은 잎으로 잉태된 생명을 키워가고 있을 뿐입니다. 꽃이 진 나무에서 올라온 연푸른 잎들이나 가을 초입 꽃을 피울 배롱나무와 칠지화의 잎조차 생동감으로 펄럭입니다. 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진득하고 소박한 연둣빛 아이들입니다.
커다란 창으로 내다보는 마당이나 마당 곳곳에 제멋대로 자라나는 여리고 푸른 생명들이나 모두 찌뿌둥하고 후덥지근한 오늘을 즐기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은 화요일(火曜日)이네요.
뜨거운 불을 곁에 두고 바라보며 멍 때리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푸르른 초록들이 "나를 보면서 멍 때려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아니 "이왕이면 내속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