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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마당있는 집에 삽니다
05화
만남도 헤어짐도 돌아보면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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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Jun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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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올라온다고 그런지
아침에도 바람이 제법 붑니다.
사람 키만큼 자란 백합은 몸뚱이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꽃송이를 맺고 있지만,
너무 커버려 그런지 다른 아이들은 한껏 향기를 내뿜다
꽃잎이 갈라져 나뒹구는 지금까지도,
맺혀있기만 할 뿐 활짝 웃어 주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입술을 떨며 막 봉우리를 열듯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얼굴을 보고 싶은데...
오늘 심한 바람에 꽃몽우리가 떨어지지나 않을지 어설픈 염려가 듭니다.
오랜만에 많이 달린 대봉감이 또 떨어졌습니다.
아침에 보니 네 개나 떨어져 있습니다.
몸도 가누지 못하다 어느새 뒤집기를 하고 기다가
마침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기를 보듯이...
꽃이 피고 진 후에 맺혔던 작은 알갱이가
고깔 아래 제법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해했는데
빨갛게 익어 보지도 못하고 하나둘씩 떨어져 버리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려고 매달려 있었던가 묻고 싶은 것은 내 마음에 불과한 일인진 모릅니다.
든든한 집을 부지런히 지어놓고
봄이면 찾아와 알을 품고,
태어난 새끼들과 강남으로 갔던 제비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더니
아가들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독수리 오 형제, 아니 제비 오 형제는
하루 종일 목을 내밀고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울어댑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비 아가들은 결심이라도 한 듯
하얀 띠를 두르고 외칩니다.
"밥 주세요"
"또 주세요"
볍씨 하나 물어다 준 적 없고,
세워 둔 차위에는 새끼 먹이느라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흔적을 흘리고,
집 아래 받쳐 둔 종이 판자 위에도 수북이 쌓여 있는
아가들의 흔적들(제비ㄷㄷ ㅗ ㅇ)...
그저 제비가 한 일이라곤 아파트를 지어놓고
매년 찾아와 식구들을 늘인 후 함께 떠난 것뿐인데...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나 봅니다.
많이 자란 아기 제비들을 보니
갑자기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얘 네들도 이젠 떠나겠구나"
갑자기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문득 제비집 아래 배롱나무가 벌써
꽃봉오리가 벌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 보입니다.
뜨거운 여름과 초가을까지 붉게 밝혀주는 배롱나무,
백일 동안 꽃이 피고 지기를 이어 준다 해 붙여진
귀한 이름 배롱나무.
배롱나무가 제비는 곧 떠날지 몰라도
자신은 곧 꽃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입니다.
봄이면 언 땅을 헤집고 올라와주는 생명들부터 멀리서도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제비들 형형색색의 꽃들과 아름다운 향기로 채워주며 열매까지 안겨주는 만남의 연속입니다.
흐름을 따라갈 곳으로 가고, 사라질 것으로 사라져 새로 오는 계절을 이어가는 헤어짐을 안겨줍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분된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떠나는 것들도 당연한 것이고 찾아오는 것들도 당연한 것 들입니다. 그저 선을 긋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눈에서 보내기도 싫고 새롭게 받아들이기도 힘든 것뿐입니다.
마당에서는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 아니고, 이어짐이며 새로운 관계의 형성입니다.
백합꽃이 핀 후에도 버티고 있는 푸르른 꽃대는 알뿌리에 든든한 양분을 제공해 내년을 기약합니다.
이제 곧 떠날 아기 제비도 내년엔 가족을 끌고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잠시의
이별
도 아쉬워하는 나에게
붉은 꽃 배롱나무가 위로해주듯 말입니다.
제비오형제가 맞습니다. 한 마리는 숨어있네요...
p.s. 갑자기 생각난 가사를 찾아봅니다. 권태수 김세화 님이 함께 부르는 "작은 연인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yQIbjVid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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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별
감성에세이
Brunch Book
이 맛에 마당있는 집에 삽니다
03
수선화
04
오늘 아침 봄 마당의 짧은 풍경 하나, 나무들
05
만남도 헤어짐도 돌아보면 하나입니다.
06
"화火"요일, "불멍" 대신 "풀멍" 어떤가요?
07
비 오는 아침 마당 풍경
이 맛에 마당있는 집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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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가꾸며 흙에서 배워가는 자연 속 일상의 다양함과 여행으로 얻는 인문기행기를 쓰고 그리며, 순간의 이어짐을 소중히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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