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의 봄은 이미 왔건만 햇살이 내리쬐지 않는 아침 마당은 겨울 못지않게 춥다. 아니 마당을 걷는 사람만이 느끼는 추위 인지도 모르겠다. 꼬박 일 년, 사계절을 마당과 더불어 살아보니 조금은 이해를 하겠다.
흐름과 멈춤이 결국은 만나게 되는 하나라는 것을... 철학자는 아니라도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말을 조금씩 깨달아간다는 말이다.
작년 가을 열매도 따지 않아 붉은 눈물을 겨우내 말려가던 산수유는, 말라죽은 아이들의 생명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갈라지고 벗겨진 마른 몸뚱이 사이로 봄기운을 받아들여 하루가 다르게 노란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 봄의 전령은 한발 뒤로 물러나고 다른 아이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마당이다.
뒷마당의 붉은 목련은 추운 겨울에 꽃몽우리를 맺혔다. 겨우내 잉태된 몽우리는 서서히 자라 이월에 꽃몽우리를 보이더니 조용히 성숙해져 왔다. 아침마다 새 모이를 주면서 지켜본다. 삼월이 돼서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붉어진 속살을 살짝 내밀었다. 지난겨울의 추위와 고통이 없었다면 잉태되지 않았을 아이들이다. 사월은 돼야 붉은 꽃을 터트릴 듯하다.
오늘 아침 자목련은 지난주 보단 더 벌어지고 이제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릴 채비를 하는 듯하다.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제일 큰 꽃몽우리가 상처를 입었다. 아마도 새들이 쪼은 것이 아닌가 싶다. 몇 달 전부터 새 모이를 주니 새들이 데크 주변으로 많이 몰려든다. "세상에, 은혜도 모르는 녀석들..." 이 아이는 꽃을 피우기 위해 일 년을 기다린 아이들인데, 이름도 모를 새가 쪼아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새에게도 꽃몽우리에게도 뭐라 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순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자연의 모습인데, 제대로 꽃이나 피울까 안쓰럽게 여기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듯하다. 자연 속에 살고 있다면서 아직도 동화되지 못한 나만 어색해 보인다.
솜털로 둘러싸인 목련꽃몽우리의 개화를 기대하며 벌어지는 모습을 매일 관찰하다, 다른 나무들의 봄은 미처 보지 못했다. 서부해당화는 분홍 꽃망울을 품고 활짝 필 날들을 알리려는 듯 여린 잎이 가지마다 풍성하게 나와있다. 옆의 박태기나무 역시 가슴 아린 진분홍 꽃을 피워 낼 몽우리들이 줄기마다 맺혀있다. 밥알 모양의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보랏빛의 박태기나무 꽃은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박태기는 경상도 말로 밥알을 뜻하는 "밥 티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떨어진 밥알이라도 주워 먹고 싶었을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학대받던 며느리가 죽은 후 생겨난 나무라는 얘기도 있다.
"자형화"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중국 고사에 삼 형제가 똑같이 재산을 분배하기로 하고 모든 재산을 나누다 마당에 남아있던 박태기나무 한그루도 셋으로 나누게 되었는데, 나누려고 하자 나무가 순식간에 말라죽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큰 형이 "나무는 원래 한그루로 자라는데, 우리가 자르려고 하자 말라죽었다. 화목하게 지내야 할 형제임에도 나누려고 했던 우리는 나무보다 못하지 않은가"라며 반성했다고 한다. 아마도 박태기나무가 밥알처럼 모여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연유된 얘기일지 싶었지만, 박태기나무가 주는 화목과, 함께 해야 하는 의미는 땅을 근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삶에 경종을 울려주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초목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하는데, 심기만 하고 그저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니, 마당에 심겨있는 초목들에 엮인 사연과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남들처럼 우월하게 키워내지도 못해서 부끄럽다. 진정 사랑한다면 대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함에도 무지와 게으름으로 눈요기에 머물고 만다. 그럼에도 베풀기만 즐겨하는 초목은 서운하다 않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와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올봄에는 나무와 꽃들에 이름표도 달아주고 정성으로 함께 해야겠다.
한치도 안 되는 아기 노랑 미산딸 나무는 겨우내 맺혀있던 꽃몽우리 두 개 중 하나를 틔웠다. "봄이 왔어요, 웃으세요" 하며 고르게 맺힌 노란 이빨을 드러내 놓고 한껏 웃어 보인다. 무슨 근심을 품고 볼 수 있을 아이가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조차 환하게 물들여준다.
마당엔 마음에 드는 것도 들지 않는 것도, 모든 것이 함께 있다. 신기한 것은, 그 모습이 싫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서로 다른 성질과 모양으로 살아감에도 유달리 눈에 튀는 것도 없다. 아마도 하늘과 땅과 바람과 구름이 조화를 이루어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이를 방황하고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어색하지 않은 정겨움을 나눠준다. 사월의 첫날, 스며드는 봄의 따뜻한 입김이 지친 마음속까지 새롭게 피워주길 바래보며 아침을 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