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 분다는 예보는 접했지만, 담벼락 사이로 "크르릉"거리며 날아다니는 산(살아있는) 바람 소리가 선잠을 깨울 정도로 요란한 간밤이었다. 열두 시가 넘어 두어 번 나가 미니 온실은 괜찮은지, 확인하고 옆의 비닐 창문을 잘 묶었는지 재차 본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비해 보슬거리는 가랑비는 부끄러워 숨어든 어린 새침데기처럼 살짝 흩뿌릴 정도다.
바람소리 자장가에 잠들었던 밤을 보내고 부랴부랴 나가보니 야외용 소파가 데크에서 바닥으로 나뒹굴어 있었다. 우리 동네는 산 중턱이라 바람이 많이 타는 곳이지만,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는데 어젯밤 바람이 요란하긴 했었나 보다. 염려되었던 미니 온실은 괜찮았고 바람은 잦아들어 아주 가녀린 가랑비만 조금씩 내리고 있다. 요란했던 간밤에 비하면 너무도 고요하고 깨끗한 봄날 아침이다. 요란한 바람소리보다 요란한 근심으로 보낸 부끄러움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집안에 들어와 보니 거실 앞마당에 심어둔 수선화가 꽃을 피웠다. 한 번에 하나만 아는 단순한 스타일이라 염려되었던 부분만 보고 들어와서야 방긋 핀 노란 수선화를 본 것이다. 급히 나가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본다. 이 주 전 앞마당에 잔디와 잡초를 제거하고 작은 화단을 만들어 꽃대가 올라온 수선화를 옮겨 심었던 것인데, 꽃을 피우지 않아 혹 꽃도 못 피고 그대로 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던 아이였는데, 어제 낮에도 고개 숙인 채로 있던 아인데 간밤 요란한 바람 속에서 제 얼굴을 보여 준 것이다.
몰아치던 바람에 목이 부러졌어도 그러려니 했을 터인데, 오히려 꽃을 피워냈다.
온 마당을 휘젓고 다니던 바람이 이 아이만 피해 간 것일까.
커다랗게 너무 넓게 몰아치느라 가녀린 아이를 건드리진 못했던 것일까.
고개 떨군 모습이 안쓰러워 바람도 피해 간 것일까.
모든 것을 불어 날려버릴 듯한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어쩌면 가장 힘들 그 순간에 마지막 힘으로 꽃을 피워낸 의지의 결과일까.
그저 요란하고 모진 난리 속에서도 제 할 일을 꿋꿋이 해낸 것이다. 알 수 없는 생명의 힘이 해 내고야 마는 의지와, 시간이 흐르면 되고 말 것에 대한 신비함은 아무리 생각해도 깨닫기 힘들다.
그래서 흙을 밟고 사는 삶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깨닫고 배우며 살아가야 할, 미물에 불과한다는 것을 매 순간 겸손히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선을 긋듯이 분명한 것에 익숙해져 살아온 사람에게, 때론 토 달지 말고 묵묵히 순응하면서 받아들여야만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의지와 실행으로 개척해 나가는 삶에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으론 어둡고 힘든 시간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햇살로 열리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자연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을 배우다 보면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떠나야 할 일은 떠나게 됨도 알게 된다.
그러니 굳이 억지로 조율하려고 애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모진 비바람도 산들바람으로 콧등을 시원하게 해주는 산들바람도 같은 친구다.
의심 없이 맡겨두고 기다리다 마침내는 제 몫을 해내는 여유를 오늘 아침 수선화를 통해 다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