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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08. 2021

스마트폰으로 쓴 후쿠오카 기행기 2

나가사키



2017.5.16 

4시 반에 깨보니, 옆 파트너는 이 시간에 기도하고 문자도 보낸다. 존경스럽다. 나도 저 나이 때 저런 열정으로 살았던가 싶다가, 삶의 무게에 뒤척이고 산 기억이 난다. 발에 패치를 붙여서 조금 나은듯하다만, 발바닥과 발목이 좀 시원찮다. 하기사 이만보를 훌쩍 넘게 걸어 다녔으니, 그래도 기분 좋게 다녀서 좋다. 빵 한쪽과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하카타 JR열차역으로 왔다. 7:53분 나가사키역으로 간다. 나가사키는 처음인에다 오늘은 로밍이 안되니 살짝 걱정되다가, "까짓것 일본 손바닥 안인데 뭐"로 결론, 즐겁게 다니기만 하면 된다. 자유여행이라 다들 준비를 많이 해왔다. 현장에 있는 친구들은 7명이 차까지 예약했다고 한다. 3박 4일 짧은 여행 중, 하루를 차 렌트까지 할 정도로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랍고, 약간 염려도 된다. 여긴 핸들이 반대편인데, 그래도 지금 해보지 않으면 언제 해보겠는가. 


플랫폼에 앉아 기차를 기다린다. 낯선 곳에 홀로 있게 되면 잦은 생각도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플랫폼은 우리 인생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나오면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과 혼자 다니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로 나뉜다. 하지만 인생이란 결국은 혼자 가는 길이다. 좋았던 시절도 아팠던 때도,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시간을 거쳐, 홀로 가는 것이다. 빨리 그 현실을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오히려 감사해야지. 그리고 부르면 달려 올 지인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부를 용기가 아직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좀 더 남이 부를 수 있는, 찾는 사람이 되야겠다 싶다. 그래서 사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북적거리며 나이 들어가야겠다. 


나가사키행 기차를 탔다. 맘에 드는 것은 의자 시트가 전부 가죽이다. 검은 가죽의자다. 요즘 집집마다 대부분 있는 리클라이너 의자 같다. 이런 한 끗 차이가 격을 높인다.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옆에 앉은 회사원 아저씨는 샌드위치 아침식사 후 마스크를 새로 꺼내 쓰고 의자를 제쳐놓고 잘 준비를 한다. (일본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마스크를 잘했던 것 같다. 오히려 코로나 펜데믹 때 처음에 마스크를 잘 안 써서 문제였지) 이전 유레일 타던 생각이 나서 음료 파는 칸으로 나가보려는데 다리가 긴 분이라 나가기가 불편할 것 같다. 중간 어느 역엔가 옆사람이 내려 옆자리에 배낭을 내려놓으니 편하다. 기차가 많이 흔들거린다. 이 기차는 생활권에 속해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종착역에서 내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나가사끼가 항구도시임을 보여주는 배, 조형물과 용 조형물. 색깔이 일본스럽다.


나가사키는 규슈 지방 북쪽에 있는 도시로 일본이 두 번째로 서방세력에 개방한 항구도시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작지만, 유럽 느낌도 있다. 우리나라와는 악연으로 얽혀 있는 일본이고, 특히 나가사끼는 2차 대전에서 결국 일본이 백기를 들게 만든 원폭 투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나, 이번 여행에선 후쿠오카에서 하루 여행으로 갈 수 있는 곳을 고르다, 나가사키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걸어 다니면서 보고, 낯선 곳에서의 쉼을 얻고자 한다. 역 주변에도 원폭의 아픔을 안고 있어서일까 삶을 관조한듯한 모습의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나가사키는 "느리게 천천히 가자"는 도시 같다. 트램도 신호등도 천천히 도시를 걸어서도 다 볼 수 있을 듯하다. 고즈넉하고 오래된 듯한 곳도 많다. 


 안경다리와 강 주위 낡고 오래된 주택들, 일본의 베니스 같다고 한다.


역에서 일일 전차권을 끓어 전차 타고 다니기로 했다. 올드 전차는  유명한 장소로 연결되어 있으니, 대부분 둘러볼 수 있다. 시간도 얼마 안 걸린다. 시내를 가로지른다는 메가네 바시 강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돌다리 안경다리를 보고 안경 모습을 찾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진도 찍는다.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고, 시장 쪽 슈퍼 등에는 물건 사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여기가 후쿠오카보다는 물가가 조금 싸다고 한다.  


글로버 정원(glover garden)은  개화기에 글로버라는 영국 상인이 살던 집과 정원을 개조하여 공원으로 만든 곳으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Madama Butterfly )의 무대이기도 했다고 한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나는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아름다운 목조건물들이 있고 정원을 잘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보는 나가사키 전경도 아름다웠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고딕 양식의 오우라 성당


우라카미 강변의 평화공원에 갔다. 원폭 투하 희생자들을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 한다. 평화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진정한 평화를 위해 희생한 자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라는 느낌보단 뭔가 무겁고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중고등 학생들이 무척 많다는 점이 인상 깊다. 하기야 일본 인구는 우리보다 많은 1억이 넘으니,  얘들도 많긴 할 것이다. 아마도 수학여행 온 아이들 같은데 이곳을 의무적으로 들러가는 것 같았다. 남자들은 흰 셔츠에 까만 바지, 예전 어른들이 입었던 그 호크 단추 교복, 여자애들은 세일러복이다. 중학교 입학 때 교복 크게 맞춰줘, 마치 남의 옷 얻어 입었던 것 같았던 추억이 생각난다.


전철에도 청 장년이 별로 없다. 일하는 시간대라 그런가? 대부분 노인과 학생들이다. 전철을 타는 학생들은 이 지역 학생들일 것이다. 학생들이 전차 안에서 떠들고 장난치고 놀기도 한다. 아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이다. 좀 놀란 점은, 핸드폰 하는 얘들이 없다. 아니 핸드폰이 아예 없다(가방 속에 넣어 둔 건지는 몰라도 한 명도 보는 아이가 없었다). 문득 우리 어느 분에게 묻고 싶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건지를. 


평화의 공원 동상 아래 단체사진 찍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 / 선생님 설명을 듣는 학생들


아직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에 유명한 성당이 있다고 해서 들러본다. 나가사키는 일찍 개방한 곳이라 기독교 전파도 먼저 된 곳이다. 성지순례지도 있을 만큼 초기 천주교도들의 희생도 컸다는데, 니시자카 공원의 순교성지 기념성당이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언덕을 오르면서 어딘가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자세히 보니, 가우디의 건축 양식을 본받은 것 같았다. 사진 한점 찍고 나온다. 


순교성지 기념 교회 / 전차 안의 학생들. 친구들과 떠들고 논다.



나가사키는 부산 느낌이 많이 난다. 그래서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아버지 모시고 왔더라도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잠시 든다. 바닷가임에도 갈매기 소리도 안 들리고 오히려 까마귀 소리가 많이 들린다. 물 비린내도 안 난다. 다만 안경다리 쪽에서 물 비린내가 좀 났다. 


나가사키역에선 온 기차가 그대로 돌아간다. 더 못 가게 끝이다. 선로가 끝나는 곳이 바로 건물이다. 특이하다. 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기차가 살짝이라도 나가면 건물이 파괴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때가 되면 온 길로 돌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묘사한 것일까? 이유야 있겠지만. 아까 산등성이 집 들 사이에 묘지들이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일본의 체념 문화 영향이라 생각도 된다. 일본 역사를 다 논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고, 지리적인 조건으로 천재지변(지진 등)을 많이 겪고 살아와, 저항적인 면보단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풍조가 강하다. 물론 일본 장묘문화 자체가 우리하고 다르다. 화장해서 묘지를 동네에 둔다. 이게 혹 유럽 영향은 아닌가 모르겠다.  유럽 마을에는 예쁘게 꾸며놓은 공원 같은 곳이 묘지인 경우도 많다. 


여행은 휴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새로움의 추구, 다짐의 의미도 있다. 사고가 넓게 다른 것으로도 확대된다는 것 아닐까. 변화를 줄 수 있기에 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선 더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루 동안의 짧은 나가사키 일정을 마치고 16:20분 하카타역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들녘과 때론 마을 풍경. 집집마다 희끄무리한 커튼… 다 같다. 회색이다. 속을 알 수 없다. 일본이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의 집들 전부 회색 커튼이다.

  나가사키역 앞의 도로 모습, 전철 승강장과 연결 육교가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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