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나무의 고백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2권 23화

by opera


바람 한줄기로도 추스를

몸뚱이만 남겨진 채

걸쳤던 옷이 홀라당 벗겨졌네요.


내가

누군지

무엇이었는지 잊기로 했어요.


봄 여름 가을

한 해 두 해 그 이듬해까지도,

나를 환히 밝혀주었고

풍성한 결실로 인정받게 해 주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껍데기만 남은 이 모습이

오히려

처음의 나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스쳐가는 바람 유희조차 투정 않고

의리와 절개로 다져진 사군자조차 부럽지 않았던

나는

올라갈수록

구부러질 줄 알았고,

일 년 사시사철

지지도 바래지도 않은,

세월이 입혀준 초록 덧칠로

단단히 만세 하는

"있는 그대로'의 꽃이었어요.


이제

초자아를 찾기 위해

청춘의 푸름일랑 죄다 버리고

길고 긴 동면의 길을

가녀린 몸뚱이 하나로 나아갑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 자체로" 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