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야 너를 믿을게.
시험관에서 이식을 하게 되면 두 개의 성적표를 받게 된다. 첫 번째는 이식 당일 배아의 등급표고 두 번째는 피검 후 임신수치이다.
동결 3차까지 세 번의 성적표를 받았는데 한 번도 최상급 배아를 이식한 적이 없었다. 영어로는 good으로 되어있지만 중상급 배아였다.
이식준비를 마치고 시술실에 들어가니 네 번째 배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문지식이 1도 없는 내가 봐도 그간 보았던 배아들과 달리 동그랗고 투명하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서 "배아도 내막도 아주 좋네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받은 결과지에는 Excellent라는 표시가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최상급 배아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오전 11시 30분경 배아를 이식하고 컨디션이 좋아 산책을 나갔는데 갈색 혈이 라이너를 할 정도로 나왔다. 굳이 따지자면 갈색보다는 검은색에 가까웠다. 바로 집에 들어와서 휴식을 취해 양은 줄었지만 피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 문의해 보니 이식 후 하루 이틀 정도는 그럴 수 있지만 나처럼 4일간 지속되는 경우는 진료를 봐야 한다며 내원하라고 하였다. 배아가 귀가 있는 건지 신기하게도 병원에 간다니까 피가 뚝 멈췄다..ㅋㅋㅋ
너도 병원은 무섭구나...?
5일차에는 착상통이라고 느낄만한 배의 통증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프롤루텍스라는 주사를 맞고 있었다. 이 주사는 프로게스테론을 유지해 주거나 높여주는 주사인데, 기름성분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주사를 맞은 후 하루정도는 통증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게 착상통이었는지는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나의 전 글들을 다 읽은 독자라면 내가 크녹산이라는 악명 높은 '멍주사'를 처방받은 사실을 알 것이다. 주사를 맞고 처음 이틀정도는 멍도 안 들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사람들이 엄살이 심하네라고 생각했지만 3일차가 지난 후부터는 맞는 족족 피를 보고 멍이 들었다. 기본 500원짜리 동전 크기, 크게는 손가락 두 마디 이상의 사이즈로 멍이 들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멍이 가득한 내 배를 보니 문득 주사를 더 맞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5일 배양 배아의 경우 7일차에 매직아이라도 두 줄을 보지 못한다면 거의 확률이 희박하다. 그간 임테기를 잘 참아왔지만, 한 줄이라면 피검사를 당겨서 주사를 빨리 끊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퇴근길에 얼리 임테기 2개를 샀다.
같은 소변컵에 두 개의 임테기를 담그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어 두 개의 종이컵을 준비해 임테기를 적셨다. 처음 1분 정도는 반응이 없길래 '아 이렇게 적극처방을 했는데 이번에도 안 됐구나, '라는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하나의 임테기가 먼저 연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두 번째 임테기도 선명하진 않지만 두 줄이 그어졌다.
자연임신 1년, 시험관 8개월 만에 처음 본 두 줄이었다.
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정신없이 우는 와중에도 누구보다 기뻐할 남편의 얼굴이 생각났다.
마침 남편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왔고 두 줄 임테기를 보여주며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7일차 밤부터 8일차 오전까지 또 갈색 혈이 비췄지만 양이 많지 않고 시기상 착상혈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 병원을 따로 방문하지는 않았다.
두 줄을 봐서 그런지 배도 여기저기 콕콕 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가슴 통증이 생기면서 붓는 느낌이 들었다.
7일차 저녁부터 10일차인 오늘까지 아침, 저녁으로 임테기를 하며 진하기 비교를 하고 있다.
두 줄을 봐도 임테기 노예로 살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진다는데 그 말이 딱 맞다. 다른 사람들 테스트기와 비교하며 뚜렷하게 진해지지 않는 색이 신경 쓰인다. 내일이 11일차로 1차 피검 날인데 그래도 나는 내 배아를 응원하며 믿어보려고 한다. 배아야!! 나는 최선을 다 할 거야. 너도 조금만 힘내주겠니, 우리 꼭 세상 밖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