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닐 때는, 유명 대학 병원에서 부부동반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니 비용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퇴직을 하고는 비용을 고려하여 여러 곳을 알아봤다. 그러다 예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협회에서 검진을 받았다. 병원에 가니 남대문 시장처럼 소란스러웠고, 의료진의 말투도 거칠었다. 사후 상담 서비스도 안 좋았다. 불쾌한 기억만 남았다.
올해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병원을 방문했다. 의료설비도 최신식으로 갖추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척이나 친절했다. 일 처리도 똑소리 나게 잘했다. 알아서 병원을 홍보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쾌한 기억이 쌓였다.
며칠 후 검진 결과를 놓고 상담을 했다.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추가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예약을 했다. 예약시간이 아침 일찍이라 아내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했다.
한 달 후 예약 전날, 아내에게 몇 시에 병원으로 출발할 거냐고 물었다.
"그걸 나한데 왜 물어?"
"지난번에 병원까지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무슨 말이야, 아니거든, 그렇게 말한 적 없네요"
자기가 말해놓고 기억이 전혀 안 나는지 시치미를 뗀다. 식탁 벽에 걸린 달력을 가리켰다. "08:00 XX 대학병원 검진"이라고 아내가 적은 메모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월초가 되면 한 달 일정을 날짜별로 달력에 기록해 놓는다. 월중에 생긴 일정은 발생할 때마다 새로 적는다. 묻지 않아도 배우자의 일정을 알 수 있고 새로운 일정을 짤 때도 도움이 된다.
자기가 쓴 글을 보고도 자기 글씨가 아니라고 했다. 참 답답했다. 녹음을 하거나 녹화를 한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불렀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엄마 글씨로 쓴 메모인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내가 가리킨 메모를 보자마자 엄마 글씨가 맞다고 했다. 그제야 아내는 갸우뚱하며 인정을 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내 글씨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