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뻤다"
나는 기뻤다.
우울하다, 이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우울을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얻었다.
니체는 영혼의 의사들에게 말한다.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자를 목격하는 것이 그들의 환자에게는 최상의 도움이라고.
나는 정말로 좋은 것을 당신과 더 실제적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내 자신을 통해 먼저 검증한 것을 당신에게 더 안전하고 분명하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은 장담하고 당신이 읽을 수 있는 모든 우울에 대한 글들 중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다루는 것이 구체적인 것일수록 나는 더욱 강하다.
먼저 여기에서는 가볍게 그러나 궁서체로 우울을 다루기 위한 원칙들을 한번 살펴보자.
첫 번째로, 당신이 우울한 것은 절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울은 차라리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처럼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아무리 철저하게 방비한다 해도 애초에 우울의 전염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결코 당신의 어리석은 실수라거나, 당신이 자기관리를 못한 실패자인 것이 아니다.
두 번째의 원칙이다. 그러니 당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자.
모든 심리적 증세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이미 회복세에 들어선다. 증세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심리적 상태에 대한 아주 무식한 오해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의 마음은 자기가 통제할 수 있고, 또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는 야만적 발상에서 비롯한다. 자기의 주량도 통제못하는 이들이 술자리에서 코가 빨개져 내뱉곤 하는 소리들이다. 다음날 자기도 기억못하는 말들에 대해 우리가 신경쓸 필요는 없다.
세 번째로, 우울은 집단심리적 증세다.
당신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면 우울은 면역될 수 없다. 노골적으로 우울한 내담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심리상담사라면 이미 우울은 운명이다. 심.리.적. 상.태.는. 공.유.된.다. 이 시대의 실존주의 심리학과 인지과학이 대표적으로 하고 있는 얘기다. 당신이 지금은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그러니 우울은 더욱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오히려 우울한 이들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가 그들을 우호적으로 대하는 선한 의도 속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근접거리에 있는 것이 더 빨리 공유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심지어 오늘날은 사회전반에 우울이 만연해있다.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당신이 진지하게 우울을 치유하자고 할 때, 당신은 우리 모두의 치유를 돕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네 번째로, 우울은 반드시 사라진다. 단, 당신이 혼자일 때.
당신이 억지로 붙잡지만 않으면 우울은 올 때처럼 소리소문없이 떠나간다. 당신은 물론 우울 자체를 붙잡을 수는 없다. 당신이 붙잡는 것은 관계다. 우울에 대한 해소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신이 관계를 붙잡는 일은 빈번하게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당신이 관계를 붙잡음으로써 우울도 다시 붙잡힌다. 우울이 집단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당신 주변의 관계를 붙잡을 때 당신은 우울의 진원지를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당신이 진정 우울할 때 주변사람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세간과 조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당신을 지지해줄 자원이 옆에 있으면 우울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자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이다. 또는 더 큰 재난으로 작은 상처를 덮으려는 행위다.
오늘날의 주요한 우울의 양상은 관계에서 비롯한다. 당신은 우울을 치유적으로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혼자 서는 법도 배우게 된다. 이것이 우울에 대한 더 근원적인 회복의 방식이다.
다섯 번째로, 당신이 우울과 혼자 작업하는 동안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다음의 말을 기억해보자. 니체를 인용해서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이다.
"자기 삶의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당신도 분명 그럴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문제는 제기될 수 있다. 당신은 자기 삶의 이유를 아직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일이 성립될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서 당신 삶의 이유를 알려주겠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당신만이 알 수 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유의 내용이 들어갈 이유의 형식이다.
당신은 왜 태어나서 살아가는가?
당신을 몰라서 무시하던 세상의 온갖 멍청이들에게 당신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게 하려고 당신은 태어났다.
그게 당신 삶의 이유다.
우울한 당신에게는 꼭 필요하고 간절하던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이것으로 좋다.
우리 한번 이것만을 붙잡고 가보자.
거울을 보며 "나는 사람이다."라고 말해보라.
거울에 비친 그 사람의 얼굴만을, 그 표정만을 의지하며 한번 가보자.
우리는 반드시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기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