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심리상담사의 우울 #3

"화가가 되자"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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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락의 차이라면 무엇일까.


둘 다 화가 많이 나있다. 그러나 화의 방향성이 다르다.


힙합은 복수를 꿈꾼다. 이를 악물고 성공해서 내가 더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증거로 돈을 불태운다.


락은 파괴를 꿈꾼다. 허위를 폭로하고 위선을 고발하며 모든 기만의 성채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자신도 함께 산화할 것이다. 그래서 집을 불태운다.


우울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힙합이 아니라 락이다.


당신이 우울하다면 락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카프카의 소설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수 있다.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어떤 소음과 재난의 풍경 속에서 당신은 반드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세상 전부에 불을 질러버리고 싶다.


그것이 우울한 당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직한 소망이라는 것을.


숀 콜빈이 노래했듯이, 써니는 그러기 위해 집에 돌아온 것이다(Sunny Came Home).


『심판』의 요제프 카처럼 당신도 어떤 개같은 부조리함에 계속 당해오고 있었다. 카는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개같다.'라고 인식하지만, 당신은 조금 빨리 자각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우울한 것은 당신의 감수성이 아주 섬세하기 때문이 틀림없다.


당신은 이미 이 사회에 무엇인가 거대한 불공정함이 있다는 것을 그 탁월한 섬세함으로 불가피하게 눈치채고 있다.


그런 불공정함들이 위선적인 언어로 포장되어 오히려 훌륭하고 대단한 미덕처럼 행사되고 있다는 것도 당신은 이미 직감하고 있다. 말로 잘 설명할 수는 없어도 당신은 분명히 느끼고 있는데, 당신이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다는 그 이유 때문에 당신은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도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있다.


권위적으로 독재하면 안되고 모두가 평등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알고 있다. 그러한 이들이야말로 바로 그 말을 함으로써 자기가 사람들로부터 제일 높은 권위를 얻어 독재하고자 하는 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세간에는 그와 같은 이들을 오히려 찬미하고 숭상하며,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당신을 성가시고 예민한 사회부적응자 또는 불평분자 쯤으로 취급한다.


당신의 비위를 상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인 엄석대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올바른 말로 착한 척하며 실은 자기가 독재하고 싶어하는 한병태가 몹시 불편하다.


그러나 당신은 한병태를 이기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한병태 대신에 자신이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다만 가면을 벗기고만 싶을 뿐이다.


불공정한 것들이 자신은 불공정하다고 실토하게만 만들고 싶을 뿐이다.


물론 가면을 스스로 벗을 일은 없겠지.


그러니 당신은 불태우고 싶다. 친절한 미소를 짓는 표정의 종이가면도, 수수깡으로 올린 옥좌도, 은박지로 만든 왕관도, 모조리 다 휘발유를 뿌린 뒤 TNT 1천톤은 될 법한 당신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싶다.


그러한 당신은 화가(火家)다.


올바르게 불을 다룰 줄 아는 자.


참된 불의 대가다.


당신은 어둡고, 음습하며, 끈적한 그 모든 것을 불태워, 스스로 그 불길이 되어, 일소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던가.


당신 자신을 등불로 태워 세상을 밝히려던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당신이 왜 우울해졌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이 세상을 사랑했던 것이다.


당신의 몸과 같이 이 세상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사기꾼들과 위선자들에 의해 세상이 개같아지는 것이 너무 속상했을 것이다.


당신은 순수하게 사랑했고, 당신이 모든 것을 불태워 무(無)로 돌리고 싶은 것은 그 순수함의 표현이다. 당신은 순수성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정말로 누구에게도 이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복수심 같은 것은 없다.


당신은 다만 정직하게 사랑만 하고 싶을 뿐. 여느 락커들처럼 당신도 순수함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허위와 가식을 파괴하고자 하는 락킹(rocking)의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


당신은 순수한 정화의 영혼.


그 신성한 불의 소명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해 우울해진 것이다.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에는 오히려 당신은 화라는 것이 매우 불편하게 경험된다. 그것도 당연하다. 당신의 화는 당신의 운명인 까닭에 아주 크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이 크게 경험되기까지 한다면 당신은 그 앞에서 쉽사리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억압이 생겨나며, 당신의 우울은 당신의 화가 억압된 결과다.


표현되지 않으면 그 불길은 당신의 내면을 태워 아프게만 만들 것이다.


속이 탄다는 표현은 적절하다.


매일매일 속만 타는 우울한 당신의 처지가 이러하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맡은 정당한 화가의 임무를 수행해보자.


당신의 주변부터 정화해가자.


75L 종량제봉투 3장을 추천하나, 처음에는 1장으로 시작해볼 수 있다.


버려라. 다 버려라. 그것이 책이든 옷이든 전애인에게 받은 선물이든, 지금의 당신에게 허식으로 보이는 것이라면 몽땅 다 갖다버려라. 성대한 불길로 전소시키듯이 흔적도 남지 않게 해라.


생각하지 마라. 느낌이 가는대로 단순하게 즉각 행해라. 이것만이 버리는 일의 유일한 규칙이다.


불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득을 따지지도 않는다. 가상의 미래를 계산하지도 않는다.


불은 오직 현재에만 타오를 뿐이다.


그렇게 불은 실제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당신은 화가. 당신의 몸은 불을 그리는 붓. 터치가 이루어지는 곳마다 깨끗하게 정화되어간다.


당신의 마음도 순수함을 되찾아간다.


당신은 신성한 파괴자가 되어라. 낡아서 썩고 음습하게 탁해진 것들을 당신의 세계에서 내몰아라.


그렇게 당신이 재생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당신이 새롭게 그리는 것이다. 당신이 몹시도 사랑하는 이 세상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당신의 눈에 이 세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를 우리 한번 확인해보자. 또 기대해보자.


그러기 위해 당신은 가장 더럽고 개같은 지금의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신성한 불의 소명으로, 그 불이 되어.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이처럼 분명할 때, 당신의 우울한 그림자는 간 곳이 없다. 당신이 등불이 되어 지금 밝히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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