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의 광인"
순수해야 깨닫는다.
순수하다는 것은 착하고 윤리적이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순수함을 순함으로 우리는 곧잘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순함은 종속적이라는 것. 그렇기에 윤리적으로 바르고 순하게 살려고 하는 이일수록 못깨닫는다. 언어규칙에 복종하며 그 규칙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다만 무서울 정도의 정직함. 그 맑음. 투명성. 투명하기에 흑도 백도 아니다. 거기에는 선악이 없다.
한 점 일그러짐 없이 달려갈 뿐이다. 일점을 일직선으로 향한다. 즉각 그것만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한다.
날 수 있기에 나는 것이 아니다.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하늘로 몸을 던지는 이들이 깨닫는다.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것. 그러나 바위가 깨질 때까지 계란을 던진다는 중2병의 허세가 아니다. 무수한 민주주의 계란들이 손을 맞잡고 연대하면 어떤 거악의 바위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정치병의 허구가 아니다. 또는 자신의 똑똑한 지성으로 아이언계란이 되면 모든 평행우주의 바위를 물리칠 수 있다는 히어로병의 허상이 아니다.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깨어질 운명으로 계란은 그 몸을 던진다.
그럴 운명인 줄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바위라는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바위를 어떻게든 꼭 갖고 싶고, 바위에게로 간절히 다가가고 싶기에.
깨달음은 바로 이러한 짝사랑의 순수함 같은 것으로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를 요리조리 잘 굴리며 자기가 세상이라는 게임의 언어규칙을 능숙하게 파악한 마법사라도 된 것처럼 똑똑한 척하는 이들은 못깨닫는다.
오히려 멍청할 정도로 순수해야 깨닫는다.
사랑은 꿍꿍이를 궁리하는 지성으로 얻을 수 있지 않으며,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여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또한, 세간에서 말하는 원영적 사고 같은 것들로는 깨달을 수 없다. 언어적 전환을 통한 마인드콘트롤의 방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 그런 걸 할수록 점점 더 못깨닫는다.
좋아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원래 아픈 것이다. 짝사랑이면 오죽할까.
다음에 더 좋은 것을 얻는다 해도, 그건 처음에 좋아했던 그것이 절대 아니다. 처음의 그것은 영영 떠나갔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고백도 하기 전에 미처 내 곁에서 사라져버린 그 첫사랑은.
무엇보다 가장, 아픔에 정직해야 한다. 정신승리로 아픔을 무마하거나 희석하려 하면 안된다. 순수해야 한다.
아프면 스트레이트하게 아파야 한다. 가슴이 찢어져야 한다. 너무 서러워서 대지를 쳐야 한다. 하늘을 보며 울부짖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정면에서 다 무너져내리는 그 아픔이다.
그래야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던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소망이 바로 그 사랑이었음을.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었던 자신이, 사랑이라고 하는 바로 그 불가능성을 감히 소망할 수 있었음을.
그렇게 불가능한 것의 대안이 아니라, 불가능한 바로 그것을 소망해야 한다.
그 소망에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무조건적으로, 순수하게, 정면으로, 소망해야 한다.
절대 이룰 수 없는데, 절대 이루고 싶다고.
그러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줄 정확히 알아 듣고 '절대'가 와서 우리 앞에 선다.
맑은 눈의 광인이.
맑아서 모든 아픔이 순수하게 그대로 다 담긴, 그렇게 내 모든 아픔을 완전하게 다 이해하고 있는 그 눈빛은, 마치 용사처럼, 구원자처럼, 이 우주에서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그 무엇처럼 보일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나를 깨달은 것이다.
절대를.
사랑 그 자체를.
불가능했던 소망이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진 이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다.
착한 척하는 눈빛으로는 못이룬다. 악한 척하는 눈빛으로는 못이룬다.
순수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맑은 눈의 광인은 반드시 이룬다.
우리가 아무리 착하고 약하며 부드러운 척하거나, 또는 악하고 강하며 능력있는 척하면서 살아온 시간을 속상하게 느낄지라도, 그건 깨달음의 잘못은 아니다. 선하게 살면 깨닫는다고, 또는 능력을 성장시키면 깨닫는다고 우리를 속인 이들의 문제일 뿐이다.
원래 못깨달은 이들이 다른 이들도 못깨달으라고 속인다. 자기만 삽질을 하는 건 억울하기 때문이다.
깨달은 이들은 어떻게든 깨달음과 가까워지도록 안내한다. 어찌보면 이 말은 핵심이다.
우리에게는 어떻게 깨닫는지 그 방법론을 아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먼저 깨달음과 친해지는 일이 중요하다.
사랑을 얻는 특별한 방법도 있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그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다가가지 못해서, 가까워지지 못해서, 알아가지 못해서 우리는 앓았던 것이다.
그러니 아픔에 정직하다는 것은, 좋아하는 그 마음에 정직하다는 것.
순수하게 좋아하면 깨닫는다.
순수하게 미치면 깨닫는다.
순수하게 그 한 마음으로만 일관되면 깨닫는다.
순수하게 친하고자 하면.
그러면 사랑이 사랑 그 자신을, 절대로 깨닫는다.
친해지고자 하는 그 맑은 눈빛이 가장 먼저 친해지는 것은 언제나 눈빛 그 자신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