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을 빌린다"
마음은 숨결입니다. 그래서 모든 마음은 그대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대를 위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그대는 그대가 숨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대가 숨쉬는 것이라면, 그대는 다른 이도 숨쉬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대가 아무리 호흡에 대한 모든 생리학적 과정을 안다 하더라도, 그대는 결코 다른 이를 숨쉬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의 직립보행에 대한 모든 지식을 보유하더라도, 우리 앞에 있는 단 3살짜리 아이 하나도 일어나서 걷게 만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이는 스스로의 삶이 그에게 일어나서 걸으라고 시킬 때에만,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듯이 의기양양하게 일어나서 걷습니다.
아이가 그토록 대견한 것은, 삶이 아이를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세우는 삶의 힘을 빌려 그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기에, 아이는 그처럼 어엿해집니다.
그대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대가 숨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대를 숨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대를 통해 숨쉬기에, 그대도 그 숨결을 통해 함께 숨쉬게 됩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빌려서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만 빌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숨결을 빌려 숨쉬게 될 때, 하느님도 그렇게 숨쉬는 우리를 통해 비로소 숨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살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행복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극의 행복입니다.
숨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바로 그 행복입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바로 그 행복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왜 그대에게 당신을 빌려주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하느님은 그대의 행복 말고는 도무지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하느님에게는 그대의 행복만이 이 우주에서 중요한 전부입니다. 그대만이 이 우주의 전부입니다.
그대가 숨쉬며 살아있는 것, 그렇게 "있는 것만으로 좋은 것." 그것만이 하느님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대 역시도, 그대의 행복의 최고봉은 누군가로부터 그대가 "있는 것만으로 좋다."라고 하는 그 모든 표현을 전해받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대의 행복과 하느님의 행복은 일치합니다.
그대의 숨결과 하느님의 숨결은 일치합니다.
그대가 웃으면 하느님도 웃으시고, 그대가 울면 하느님도 우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의 웃음과 울음이 아닙니다. 그대를 위한 하느님의 웃음과 울음입니다. 그대와 일치되어 늘 당신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리시는 하느님의 웃음과 울음입니다. 늘 그대와 함께하는 하느님의 숨결입니다.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빌려 오직 그대의 행복만을 그리는, 둘이자 하나의 숨결입니다.
바로 둘이면서 하나된 연인의 숨결입니다.
이것을 선(禪)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