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투 Jan 06. 2018

언젠가 사라질 직업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아는 길도 나오지만, 아직은 모르는 길이 더 많다.

모르는 경우 내비게이션에 의지하거나 아니면 손님에게 물어본다.

어떤 기사분은 손님에 의해 운전을 하게 되면 피곤하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속이 편하다.

길이 막혀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설령 더 빠르고 가까운 길을 권해보아도 익숙한 길을 원하실 때가 대부분.

그래서 손님이 타면 '주로 가시는 길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상일동에서 광장동으로 가시는 손님을 태웠을 때이다.

손님은 귤을 한 박스 안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내게 귤을 다섯 개나 나눠주었다.

마음이 달달해졌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기 전 출구 앞에서 승용차 한 대가 재빠르게 끼어들자 손님은 바로 웃음 섞인 욕을 날리셨다.

달달해지려던 마음이 다시...  새콤해졌다.


그분은 정말 아주아주 친절하게 길을 알려 주셨다.


단지를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도로주행을 시작했을 때

손님의 지시가 시작되었다.

"여기선 맨 가로 가야 빨라요."

그의 말에 따라 바깥 차선으로 바꿨다.

"자~ 이제 신호 받았지... 그럼 쭉 가는 거야!"

그 손님은 길을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구간별 수월한 차선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과연 손님의 말대로 토요일 오전의 도로는 마치 갈라진 홍해처럼 뻥 뚫렸다.

3차선을 타라면 3차선을, 4차선을 타라면 4차선을 타고 달렸다.

"에이~ 길동에서 신호에 걸리겠네..."하면 

어김없이 우리 차는 길동사거리에 정차를 해야만 했다.

그분은 도로 사정, 차선 사정은 물론이고 신호의 특성까지 꿰고 있었다.


게다가 손님은 길안내, 차선 안내를 넘어 요금 안내까지 해주었다.

"저~기 다리 건너기 전에 메다 요금 올라갈 거야.."

5km까지 기본요금이 적용되는데 미터기를 흘깃 보았더니 정말 5km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다리 건너면서 또 올라가고..."

그다음 매 1km마다 요금이 올라가는데 다리의 길이는 꼭 1km였다.

목적지 근방 골목에 들어섰을 때, 몇 번째 과속방지턱에서 손님의 안내대로 또 한 번 '메다기'의 요금이 올랐다.

마치 음성인식 운전 로봇이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옆 차선의 승용차를 보다가 섬찟한 일이 있었는데

차량의 운전자는 운전대를 놓고 옆좌석의 키보드를 만지고 있었다.

자율주행 시범차량.

신기하기보다는 무서웠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재빨라 앞 차와의 차 간 거리를 나보다 더 가깝게 유지하며 진행했었다.

정차하고, 전진하고, 깜빡이를 켜고, 회전하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나보다 민첩했으면 민첩했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자율주행 자동차'기사를 자주 접하면서 운전직 일자리에 대한 위협이 시작되었다고 느꼈는데,

그 위기를 직접 목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직업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금씩 조금씩 엷어져, 먼 훗날 돌아봤을 때 '아! 그런 직업도 있었지...'하고 추억하게 만들어진다.

그렇게 지금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내 직업도 '버스 안내양'처럼 추억 속으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꼭 '운전기사'라는 직업군의 막차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그 날 그 손님은 10여 년간 같은 길을 같은 시간대에 다녔다고 했다.

훗날 운전기사가 없는 차를 탔을 때 '길 안내해주는 재미'와 '귤 나눠주는 재미'를 잃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그때가 되면 그 상황에 맞는 재미를 찾아갈게 분명하다.

버스안내양이 없는 게 당연해진 것처럼. 


 



 











 










이전 14화 손칼국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