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주로 점심을 먹고 난 후 그린다.
약 30~40 분정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데
낮잠을 자면 몸이 축 쳐져서 오후 일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하나 완성하기까지는 일주일이상 걸린다.
다른 기사분들은 휴게실에서 낮잠을 주무시거나 장기를 둔다.
나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그림.
그 시간대에는 실장님 말고는 거의 아무도 없다.
실장님은 내 그림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머리가 너무 크네, 색깔이 이상하네....
그러면서 하루는 '맨날 사람만 그리네'라고 말했다.
그런가?
사물도 그렸었는데....
말인즉슨 풍경도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래! 풍경도 그려보자.
올 겨울의 끝자락이자 봄의 길목에서 친구들과 동해를 갔었다.
그때의 바다로 정했다.
'바다 풍경사진 사물그림'이다.
그리는 도중에 이번에도 '바다 색깔이 이상해...'라고 지적질이다.
듣고 보니 먼 바다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가까운 바다는 지저분해 보였었다.
투명하게 맑은 동해가 잘 표현되지 않았다.
파도가 부서지는 포말의 반영을 묘사하고
수면에 하늘빛도 담고
물속에 투영된 물 그림자(?)에 공을 들였더니 그나마 바다가 살아났다.
바위의 어두운 부분에도 바다색을 살짝 넣었다.
바다도 바다지만 하늘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멀리 수평선 가까이 깔린 구름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바다같이 넓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단순하게 '하늘색이면 되겠지'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았다.
옅은 파란색에 누런색, 그리고 보라색과 옅은 초록 등이 뒤섞여 있었다.
보기엔 심심한 하늘이지만 내겐 난관이었다.
그렇게 '여백'으로 보일 수도 있는 빈 하늘은,
많은 노력의 결과이다.
풍경그림이 마음에 든다.
그리기 전부터 구상했으면 좀 더 따뜻한 그림이 되었으려나....
다 그린 후에야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바위 꼭대기 나무에 오르는 봄과
물속에 담긴 봄,
파도에 실려오는 봄과 따스한 봄바람,
멀리 구름이 머금고 있을 촉촉한 봄비,
따뜻한 햇살...
그리고 수평선에 작은 배를 그려 넣었다.
봄으로 만선일 배 한 척.
근데 벌써 여름이고나.